박찬욱 감독이 지난 9월 서울 용산구 CGV 용산에서 열린 영화 '어쩔수가없다'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박찬욱 감독이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미국에서 제작하고자 오랫동안 애쓴 과정과 초기 작품 구상 내용 등을 미 언론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박 감독은 27일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 관한 이야기”라며 “미국이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만큼, 미국에서 가장 잘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박 감독은 원작인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가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만큼 ‘어쩔수가없다’ 역시 미국에서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여러 차례 로케이션 답사를 하며 영화 촬영 장소로 거대한 미국 제지 공장들을 물색해 두기도 했다고 한다. 대본 역시 미국 배경에 맞춰 쓰여 있었다고 한다. 박 감독은 “(미국에서 촬영하는 게) 내겐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며 “그 외에는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접촉했던 할리우드 투자 관계자들은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제작비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을 제안했고, 결국 영화 프로듀서의 권유를 받아들여 배경을 한국으로 옮겼다고 박 감독은 설명했다. 그는 “우리 프로듀서 중 한 명인 미셸 레이-가브라스가 ‘이걸 미국 영화로 만들 수 없다면 그냥 한국 영화로 만들면 어떠냐’고 제안했을 때, 나는 계속 기다리기만 하면서 그 제안을 무시했다”며 “그런데 지금 한국 영화로 만들고 나니, 왜 훨씬 더 일찍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NYT는 “박 감독은 할리우드 스튜디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12년이라는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NYT는 이 영화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박 감독이 직면한 큰 과제 중 하나가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주인공 만수의 살인 동기를 설득력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고도 짚었다. 이병헌이 직접 박 감독에게 “일자리를 잃었다고 해서 사람이 연쇄살인범이 되냐”며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해도 연쇄살인범이 될 것 같지 않다”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박 감독은 “영화나 예술의 유일한 목적이 관객이나 독자가 ‘나라면 저렇게 했을 거야’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영화나 예술의 목적은 이 세상에 나와는 다르게 행동할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과 독자들이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감독은 질문을 던진 이병헌에게 “이 영화에서 네가 연기해야 하는 인물은 네가 아니라, 직장을 잃어 연쇄살인범이 된 사람”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어쩔수가없다’는 내달 열리는 미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작품상과 외국어영화상, 남우주연상(이병헌) 등 3개 부문 후보에 오른 상태다.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 국제영화상 부문 예비 후보(쇼트리스트)에도 들었다.

이에 박 감독은 ‘기생충’으로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 등을 휩쓴 봉준호 감독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봉 감독은 오스카 캠페인을 이미 겪어 봤기 때문에 내게 겁도 좀 주더라”며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해줬다”고 했다. 아울러 “이곳 사람들은 칵테일을 들고 매일같이 낯선 사람들과 서서 대화하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지만, 그것은 우리 한국인에게는 굉장히 낯선 것”이라며 “게다가 봉 감독과 나는 둘 다 매우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것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NYT는 인터뷰 당시 박 감독에 대해 “직접 만난 박 감독은 조용하고 온화한 인상이었다”며 “흰 칼라 셔츠 위에 자주색 스웨터를 입고 있던 박 감독은 자기 세대에서 가장 강렬하고 시각적으로 눈부신 영화들을 만든 사람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고 묘사했다.

한편 ‘어쩔수가없다’는 지난 성탄절 미국 주요 5개 도시에서 먼저 제한적으로 개봉해 현지 관객을 만나고 있다.

NYT는 미국 개봉 당일 리뷰 기사에서 “잔혹한 시대에 대한 잔혹한 이야기가 박찬욱 감독 특유의 감각으로 전달된다”며 “완벽하게 균형 잡힌 장면 하나하나가 감탄을 자아낸다”고 호평했다. 그러면서 “박 감독이 시각적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날카로운 타이밍과 정교함으로 슬랩스틱 코미디를 어떻게 배치하는지 보는 것은 즐겁다”고 했다.

다만 “생기 넘치고 종종 마음을 울리는 두 주연 배우의 연기가 지닌 균형감만큼, 영화의 톤과 분위기가 잘 조율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과장된 기교가 공포 속에서도 공감으로 가슴을 턱 막히게 할 감정의 한 방을 오히려 빼앗는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