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배우 조진웅이 문재인 정부 시절 국민 특사로 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왔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 조진웅 특사 옆자리에 홍범도 장군 영정이 놓여있다./KBS

배우 조진웅이 과거 ‘소년범’ 범죄 사실을 일부 인정하고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자 소년법의 취지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정치인과 법학자를 중심으로 반사회성이 있는 청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소년법의 취지를 감안하면 과거 소년보호 처분 이력 때문에 조진웅이 은퇴까지 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반면 네티즌 사이에선 “30년 넘게 고통을 느꼈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는 학폭도 청소년 시절이라 학교에서 처벌받으면 대학 갈 때 면죄부 줄 거냐”는 반론이 제기됐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장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을 지낸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진웅의 경우 청소년 시절에 잘못을 했고, 응당한 법적 제재를 받았다”고 적었다.

그는 “청소년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면서도, 교육과 개선의 가능성을 높여 범죄의 길로 가지 않도록 한다. 이게 소년 사법의 특징”이라고 했다. 이어 “그 소년이 어두운 과거에 함몰되지 않고, 수십 년간 노력해 사회적 인정을 받는 수준까지 이른 것은 상찬받을 것”이라며 “지금도 어둠 속에서 헤매는 청소년에게도 지극히 좋은 길잡이고 모델일 수 있다”고 했다.

한 교수는 “누군가 어떤 공격을 위해, 개인적 동기든 정치적 동기든 선정적 동기든, 수십 년 전의 과거사를 꺼내어 현재의 성가를 생매장시키려 한다면, 사회적으로 준엄한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은 그 연예인이 아니라 그 언론”이라고 했다.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조선DB

그는 “이런 생매장 시도에 조진웅이 일체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건 아주 잘못된 해결책”이라며 “그런 시도에는 생매장당하지 않고, 맞서 일어나는 모습으로 우뚝 서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가 좋아했던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일제는 어떤 개인적 약점을 잡아 대의를 비틀고 생매장시키는 책략을 구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예인은 대중 인기를 의식해야 하기에 어쩌면 가장 취약한 존재다. 남 따라 돌 던지는 우매함에 가세 말고, 현명하게 시시비비를 가리자”며 “도전과 좌절을 이겨내는 또 하나의 인간상을 그에게서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대한성공회 송경용 신부는 “조진웅 배우, 돌아오라!”는 글을 올렸다. 송 신부는 “(청소년 쉼터에서는) 각종의 크고 작은 범죄로 경찰서에 들락거리는 것은 매일의 일상이었고, 교도소(소년원)에 가는 아이들도 꽤 많았다”며 “이런 아이들 대부분 그 폭풍 같은 시절을 지나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시절을 들춰내 오늘의 시점에서 판단하면 그 아이들(이제는 다 어른)은 크게 숨을 쉬어도 안 되고, 살아 있어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잘못에 대해 합당한 처벌을 받고 반성하면서 살아간다면 오히려 응원을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은 7일 한 교수와 송 신부의 글을 공유하면서 “조진웅이 청소년 시절 일진들과 어울리며 범죄를 저지르고 소년원 생활을 했다는 것이 알려졌다”며 “청소년 시절의 잘못을 어디까지, 어떻게, 언제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고민이 깊어진다”고 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박범계 의원은 페이스북에 “조진웅 배우의 청소년기 비행 논란이 크다. 저도 깜짝 놀랐다. 그의 은퇴 선언에 더 놀랐다”며 “잊은 기억의 과거로, 현재를 살아가는 그를 평가하려면?”이라고 썼다. 박 의원은 “그가 숨긴? 그 어릴 때의 과거는 그가 스스로 잊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될 기억이었을까요”라며 “대중들에게 이미지화된 그의 현재는 잊혀진 기억과는 추호도 함께 할 수 없는 정도인가요”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에서는 한 교수 등의 주장에 동의하는 의견도 있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교수와 김 의원의 페이스북에는 “앞으로는 학폭도 청소년 시절이라 학교에서 대충 처벌받으면 대학 갈 때 면죄부 주겠군요” “조두순에게 가서 재기하고 성공하면 존경받을 수 있다고 해보라” “당한 사람들은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TV에서 계속 봐야 하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데 그건 2차 가해가 아니냐. 피의자는 이미 소년원이란 곳에서 죗값을 다 치렀다고 해도 당시 피해자와 그의 가족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정신적 고통을 느끼며 지낼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을 해주시길 바란다”는 댓글이 달렸다.

배우 조진웅이 2025년 8월 15일 광복 80주년 경축식에 깜짝 등장해 국기에대한경례 맹세문을 낭독했하고 있다./KBS뉴스 유튜브

“노력했다고 성공했다고 관대하면 그게 법인가? 아무리 어렸다 해도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 독립운동가를 비교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조진웅은 검찰 개혁에도 목소리 냈다는데 검찰 폐지 외치는 사람들 보면 전과 1~2개씩은 기본! 역시 검찰 폐지는 범죄자만 원하는 듯!”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도 한 교수와 김 의원을 향해 “다들 제 정신인가? 좌파 범죄 카르텔 인증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주 의원은 “조진웅은 가명을 쓰고 범죄 전과를 감추며 온갖 정의로운 척 위선으로 지금의 지위를 쌓았다”며 “피해자들은 평생을 고통에 헤맨다. 가명 때문에 당시 극악했던 범죄자가 조진웅인지 모르고 지냈을 것”이라고 했다.

주 의원은 “이것이 감쌀 일인가? 당신들 가족이 피해자라도 청소년의 길잡이라고 치켜세울 수 있나”라고 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피해자를 대리했던 김재련 변호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박원순 시장을 두둔했던 사람들이 두더지처럼 튀어나와 모 배우를 두둔한다. 일관성 쩐다” “소년범을 품어야 한다는 사람들 맘 속에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들어있으려나? 그렇지 않다면 그 입 다물라!”고 썼다.

김 변호사는 논란에 대해 “진영 논리에 갇힌 사람들의 모순된 인식을 드러낸 사건 같다”이라며 “모 배우는 특정 진영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그 배우에게는 결국 독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형사 책임을 졌으니 아무 문제없다는 취지의 특정 진영 사람들 글을 보며 과연 그들이 상대 진영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취해 왔는지, 앞으로도 그러할 것인지 심히 의문이 들었다”며 “진영 논리가 삼켜버린 인권 문제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소설가 김별아씨는 페이스북에 “사람으로서 겪지/하지 말았어야 할 범죄 후에, 지금 피해자 2인은 살아있을지(어떻게 30년을 견뎠을지는 차치하고), (나머지) 가해자 둘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라며 “이런 끔찍한 범죄에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이입하는 사람들의 비인간성이 소름 끼침”이라고 했다.

앞서 연예 매체 디스패치는 지난 5일 조진웅이 고등학교 2학년 때 특가법상 강도·강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소년원에 송치됐다고 보도했다. 조진웅이 무명배우로 활동할 당시 극단 동료를 폭행해 벌금형을 받았고, 음주 운전을 하다 면허 취소 처분을 당한 전력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자 소속사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배우에게 확인한 결과 미성년 시절 잘못했던 행동이 있었음을 확인했다”며 “단 성폭행과 관련한 행위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소속사는 또 조진웅이 본명인 조원준 대신 부친의 이름인 조진웅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범죄 이력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는 “과거를 감추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 결심에서 비롯된 배우의 진심”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특히 그가 형사·독립투사 등 그동안 맡았던 정의롭고 강직한 이미지의 역할과 괴리가 컸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조진웅은 드라마 ‘시그널’, 영화 ‘경관의 피’, ‘독전’ 등에서 형사 역을 맡았다. 또 영화 ‘대장 김창수’(2017), ‘암살’(2015) 등에서는 독립투사를 연기했다. 이런 이미지를 바탕으로 조진웅은 2021년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에 국민 특사로 참여했다. 올해 제80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대표 낭독했다.

논란이 커지자 조진웅은 다음 날인 6일 소속사를 통해 “모든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고 오늘부로 모든 활동을 중단한다”며 “앞으로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성찰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