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우리네 아버지였고 왕관을 잃은 노왕이었으며 치열한 샐러리맨이자 때로 손자들이 놀리는 할아버지였다. TV와 무대를 오가며 대한민국 문화의 작은 역사를 쓴 배우 이순재(91)가 25일 새벽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지상에서 배우로서의 업(業)을 마감하고 천상(天上)의 무대를 밟게 됐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이순재는 1954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한 뒤 연기에 빠져들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해 햇수로 70년간 연극·방송·영화를 넘나들며 400편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연기자를 ‘딴따라’라 부르던 시절, 그는 연기에서 ‘예술’을 봤다. 해체되다시피 했던 서울대 연극회를 재건했고, 1960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극회 중심으로 ‘실험극장’을 창립했다. 한국의 ‘소극장 운동’이 그에게서 비롯됐다.
무대는 그에게 ‘예술’의 터전이면서 ‘직장’이었다. 꾀부리는 것 없이 누구보다 성실했다. 2012년에 연극 ‘아버지’를 공연할 때 무대 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다가 무대 장치에 부딪혀 눈 위가 찢어졌다. 철철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공연을 마쳤다. 평소 “쓰러지기 전까지 평생 연기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지난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도 건강 악화로 공연을 취소하기 직전까지 무대에 섰다. 당시 “건강을 회복해 다시 무대에 돌아오겠다”고 했던 그는 병상에서도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만큼 후배 연출가·배우들에게 엄격했다. 1964년 TBC 개국 공채 1기 탤런트로 입사한 뒤 1970~1980년대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회장을 세 차례 지내며 후배 양성과 방송 환경 개선에 힘썼다. 그가 강조하는 건 똑같았다. “지각, 특별 대우, 잘못된 발음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세 가지”라고 했다. 실상 업에 대한 ‘기본’이었다. 그는 실제로 연습실에 가장 먼저 나와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에게 자신의 결혼식 주례를 맡겼던 가수 겸 배우 이승기는 “기억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 이름을 줄줄이 외우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고 했다.
대본을 존중했고,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에 도전했다. 최고 시청률 64.9%를 기록한 ‘사랑이 뭐길래’(1991)의 ‘대발이 아버지’에서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을 표현했다면, ‘거침없이 하이킥’(2006)에선 동영상 보며 킥킥대는 ‘야동 순재’, 근엄한 척하지만 실상은 철없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거침없이’ 연기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간 그의 삶은 선후배들에게 언제나 귀감이었다. 줄곧 후배들의 ‘롤모델’로 꼽혔고, 연기의 교과서이자, 작가와 연출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불렸다. 고(故) 송해는 생전에 “후배지만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라며 “최고참인데도 겸손하고, 선후배 모두 잘 챙긴다”고 했다. 그와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등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춘 배우 김혜자는 “언제나 저에게 선생님”이라면서 “예능 ‘꽃보다 할배’에선 언제나 우물쭈물하지 않고 진취적이어서 너무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좀처럼 쉬는 법이 없었다. ‘상도’(2001), ‘장희빈’(2002), ‘불멸의 이순신’(2004), ‘이산’(2007) 등 사극을 비롯해 ‘흥부네 박 터졌네’(2003) 등 현대극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작품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했다. 노년에도 ‘세일즈맨의 죽음’(2016) ‘앙리 할아버지와 나’(2021) ‘장수상회’(2023) ‘리어왕’(2023) 등 연극에 출연하며 ‘대학로의 방탄노년단’으로 불렸다.
연기하느라 두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도 아내와 함께하지 못했다. 연기하느라 밤샘은 일쑤였고, 생활에 쪼들린 적도 많다. 하지만 자신의 연기 인생 60주년을 기념해 출연했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처럼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 2021년 한 방송에서 “손녀는 이미 대학원에 진학했고 손자는 내년에 대학에 간다”면서 “돈 많이 드는 대학을 간다고 해서 골치 아프다”고 했지만, 열심히 무대에 서며 자기 손으로 손자들 학비를 다 댔다.
짧게 정치에도 몸담았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민자당 후보로 서울 중랑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예술인 출신 국회의원이라는 새로운 경로를 열었다. 특히 문화·외교 분야 의정 활동에 주력했다.
1970년 TBC 연기대상 대상을 시작으로 MBC 연기대상 연기자 부문 특별상, SBS 연기대상 공로상, 제27회 이해랑연극상 특별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지난해 드라마 ‘개소리’로 KBS 연기대상을 받았을 때, “시청자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도와줘서 고맙다”는 90세 노배우의 소감은 많은 이를 뭉클하게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날 고 이순재 배우에게 최고 등급 문화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과 국민 문화 향유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이에게 수여된다.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치계 원로인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연기자 박근형 백일섭 장용 김수로 유준상 윤유선 김성환 김학철 오만석 최현욱 등과 방송인 김영철 줄리엔 강 박경림 가수 샤이니 민호, 가수이자 배우 이승기 등 많은 후배가 다녀갔다. 상주들 상복과 고인의 수의를 지은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씨는 “타인에게 피해 안 주려 애쓰느라 아픈 모습도 잘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유족은 아내 최희정씨와 아들 이종혁씨, 딸 이정은씨가 있다. 발인은 27일 오전 6시 20분 엄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