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91세를 일기로 별세한 배우 이순재는 한평생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양한 도전을 감행했고, 덕분에 젊은 세대에서도 인기를 누린 드문 원로 배우였다.
시청률 65%를 기록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1992)에서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표상이었던 ‘대발이 아버지’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던 고인은 ‘허준’(1999), ‘상도’(2001), ‘이산’(2007) 등에서 카리스마 넘치고 묵직한 연기로 사랑받았다.
그랬던 그가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의 나이 꼭 칠순이던 때다. 기존의 근엄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음성 인식 기능이 가능하다는 손자의 헛된 말을 믿고 노트북 모니터에 대고 ‘야동’(야한 동영상)이라고 소곤거리는 코믹 연기로 큰 사랑을 받았다. ‘야동 순재’ 캐릭터로 어린이 팬들까지 생겨났다. 속편 ‘지붕뚫고 하이킥’(2008)에서는 고(故) 김자옥과 노년의 로맨스를 연기하고 사위인 정보석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안겼다.
나영석 PD가 연출한 tvN 예능 ‘꽃보다 할배’(2013)를 통해 젊은 층 사이에서 인지도를 더 높였다.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다른 원로 배우들과 함께 출연한 이 예능에서 이순재는 지치지 않는 체력과 의욕 넘치는 모습으로 ‘직진 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영어, 일본어, 독일어 등에도 능숙한 면모를 보인 건 물론이고 다른 언어에도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세계 시민’이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이후 2014년, 2015년, 2018년까지 ‘꽃보다 할배’의 맏형으로 팀을 이끌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연극 무대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박소담, 권유리(소녀시대), 김슬기 등 젊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등에 출연하며 젊은 관객들에게도 호응을 얻었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관객 몰이에도 성공하며 ‘대학로의 방탄 노년단’으로 통했다. 구순이던 지난해에는 건강 악화로 중도 하차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형식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 출연해 샤이니 민호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쉬지 않고 달려온 그의 연기 인생은 말년에 상으로 보답받았다. 이순재는 2024년 KBS 드라마 ‘개소리’에서 개의 목소리를 듣게 된 원로 배우를 연기했고, 연기 대상에서 대상을 받아 KBS 역대 최고령 수상자 기록을 세웠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언젠가는 기회가 한 번 오겠지 하면서 늘 준비하고 있었는데 오늘, 이 아름다운 상, 귀한 상을 받게 됐다”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전했다. 2025년에는 한국PD대상에서 출연자(배우 부문)상 수상자로 호명됐지만, 건강 악화로 참석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