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조 걸그룹 뉴진스 멤버 전원이 ‘어도어 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대중음악계에선 이들의 완전체 활동이 단기간 속도감 있게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멤버들이 ‘시간차 복귀’를 택한 것이 사실상 내부 조율의 어려움을 엿보인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멤버 혜인·해린은 소속사와 협의를 통해 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민지·다니엘·하니는 사전에 어도어와 합의되지 않은, 자체 준비한 복귀 입장문을 냈다.
13일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같은 멤버들의 시간차 입장 배경에는 실제 각 멤버가 가진 복귀 의사의 온도 차이에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11일 혜인·해린을 포함한 뉴진스 멤버 네 명이 가족들과 함께 이도경 어도어 대표와 면담 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민지·다니엘·하니 중 국내에 머물고 있던 두 명이 면담에 참석했고, 남은 한 명은 “남극 체류 중”이라며 불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혜인과 해린만이 어도어 복귀 의사를 따로 전했고, 면담에 참석했던 국내 체류 멤버 2명은 활동 재개를 위한 전제 조건만을 전한 채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12일 민지·다니엘·하니가 소속사와 별도로 낸 입장 발표도 혜인·해린의 복귀 공표 소식을 접한 뒤 긴박하게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세 사람은 당일 입장문에서 “한 멤버가 현재 남극에 있어 (복귀하겠다는 의사) 전달이 늦게” 됐고, “현재 어도어가 회신이 없어 부득이하게 별도로 알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세 사람은 실제 해린·혜인의 복귀 결정 소식을 안 직후 어도어 측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곧바로 회신을 받지 못 하자 자체 준비한 입장문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어도어는 “멤버 분들과 추가 개별 면담 일정을 조율 중으로 원활한 논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멤버들 복귀 신호탄 된 ‘법적 완패’
멤버들의 심경 변화에는 지난달 30일 이들이 1심에서 완패한 어도어와의 ‘전속 계약 유효 확인 소송’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재판부는 1심 판결에서 뉴진스와 어도어 간 전속 계약이 2029년 7월 31일까지 유효하다며 어도어의 손을 들어줬다. 또한 약 40분간 뉴진스 측이 주장해 온 어도어의 귀책 사유들이 사실상 전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취지의 판결문을 낭독했다. 민사 재판에서 완패에 가까운 패소 이유를 이토록 길게 명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재판부는 특히 판결문에서 어도어와 뉴진스 간의 전속 계약에 민희진 전 대표의 존재가 핵심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또한 “(제출된 카톡 증거 등을 봤을 때) 민희진 자신이 뉴진스를 데리고 어도어 및 하이브(어도어 모회사)로부터 독립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간 민 전 대표에게 제기된 탬퍼링 의혹을 지적한 판시를 남겼다. 멤버 전원이 완전체로 어도어 복귀에 성공하더라도, 이들이 그토록 원했던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프로듀싱 복귀는 불가할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먼저 복귀를 공표한 해인·혜린 이외의 멤버들에겐 특히 활동곡 권리와 현 전속 계약 구조가 사실상 어도어에 완전체 활동 향방의 결정권을 쥐어주는 형태인 점이 심리적 압박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그룹명 ‘뉴진스’와 그간 활동곡의 권리 또한 전부 어도어에 귀속돼 있고, 어도어는 뉴진스 그룹 전체뿐 아니라 멤버 개개인과의 전속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만일 해린·혜인 두 사람만 어도어에 돌아온다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이들이 ‘뉴진스’ 이름을 사용하고, 기존 활동곡으로 무대를 이어가는 데 문제가 없다. 이미 가요계에는 앞서 소속사와 전속 계약 분쟁을 겪다 5인 멤버 중 2명만 남아 활동을 이어간 그룹 ‘동방신기’, 멤버 키나만 남은 상태에서 2기 멤버들을 새로 뽑아 활동 중인 ‘피프티 피프티’ 선례도 존재한다.
법원은 또한 지난 3월 어도어가 제기한 ‘(뉴진스의) 독자 활동 금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멤버들이 이를 어기고 어도어와 합의 없이 활동할 경우 위반 행위 1회당 10억원을 배상하도록 하는 간접 강제를 인용했다. 전속 계약이 유효한 이상, 멤버들이 독자 활동을 펼칠 방법이 원천 차단된 상태다.
◇민희진·뉴진스 어록들, 완전체 위한 남겨진 숙제
현재 업계에선 뉴진스 멤버 전원이 어도어 복귀 의사를 밝힌 만큼, 전속 계약 유효 확인 소송의 1심 항소 기한인 13일 자정(14일 0시)은 항소장 제출 없이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재판은 그대로 종결되며, 멤버 전원이 어도어로 돌아가 활동에 복귀할 법적 의무가 발생한다.
다만 이들이 완전체 복귀 조율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해도 ‘배은망덕 (아이)돌’이란 곱지 않은 대중적 시선은 향후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앞서 민지·하니·다니엘이 어도어와 협의 없이 복귀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K팝 팬덤 사이에선 ‘위장 귀순’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이진스 vs 삼진스냐’ 등 부정적 반응이 이어졌다. 일부 팬은 지난 1년간 멤버들이 이어온 회사 비판 어록을 정리해 공유하거나 “어도어 직원들은 이제 뉴진스에 대처하기 위해 바디캠을 차고 일해야 한다”는 반응도 보였다.
이 같은 반응은 뉴진스 멤버들이 지난 1년간 민희진 전 대표 대신 직접 전면에 나서 어도어와 분쟁을 겪은 주요 원인이 소속사와 협의 없이 내린 일방적 결정들에 있었기 때문이다. 멤버들은 지난해 8월 민희진 프로듀서가 하이브 이사회를 통해 어도어 대표직에서 해임된 이후 소속사와 합의되지 않은 기습 라이브 방송이나 라디오 및 언론 인터뷰로 민 전 대표의 복귀를 요구해 왔다. 지난해 10월에는 멤버 하니가 국정감사장까지 나가 소속사 어도어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을 공개 비판했다. 이후 11월에는 소속사와 협의되지 않은 기자회견을 통해 ‘어도어의 귀책 사유로 전속 계약이 해지된다’며 일방적으로 선언하면서 “법적 계약을 무시한다”는 논란을 빚었다.
멤버들과 이들의 가족들이 향후 ‘민희진 전 대표’와 거리감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도 성공적인 복귀를 위한 해결 과제로 꼽힌다. 양측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앞서 멤버 혜인과 해린은 복귀 과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어도어에 ‘민희진 전 대표의 부재에도 활동을 이어나가겠다’고 합의했지만, 나머지 세 멤버는 이런 부분에 대한 조율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편 13일 민희진 전 대표는 뉴진스 멤버들의 복귀 발표에 대해 “그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는 “전 어디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든 뉴진스는 5명으로 온전히 지켜져야 한다”며 “멤버들이 더 나은 뉴진스가 되길 바라며 무엇보다 멤버 모두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또한 “그동안 여러 소송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우리 모두에게 어려운 시기가 길게 이어졌다”며 “저와 하이브간의 소송은 뉴진스와 전혀 관계없는 별개의 소송”이라고 했다.
최근 새 기획사 오케이(ooak)를 차린 민 전 대표는 현재 어도어의 모회사인 하이브와 ‘계약 해지 확인 및 풋옵션(특정 가격에 주식을 팔 권리) 행사 관련 주식 매매 대금 청구 소송’을 다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