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만 채워진 노래, 멤버 6명 중 한국인은 딱 한 명.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를 K팝 그룹으로 볼 수 있을까?
연예 기획사 하이브의 글로벌 그룹 캣츠아이가 미국 대중음악계 최고 권위인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신인상’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상’ 두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리면서, 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도 다시 커지고 있다. K팝 양성 과정을 거쳐 탄생한 만큼 ‘K팝 최초 그래미 신인상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나오는 반면, 주 활동 무대가 한국이 아닌 만큼 미국 현지 그룹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 K팝 방법론 따른 미국 걸그룹? ‘캣츠아이’
작년 6월 데뷔한 캣츠아이는 그룹 BTS, 르세라핌이 속한 하이브가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선보인 걸그룹이다. 당시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글로벌 걸그룹 론칭 계획을 밝히며 “K팝이 진정한 세계의 주류가 되려면 K를 뗀 ‘그냥 팝’ 그 자체가 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위해 하이브는 미국 게펜레코드와 손잡고 2023년 대규모 글로벌 오디션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The Debut: Dream Academy)를 진행했고 다국적 멤버 6명을 선발했다.
캣츠아이는 K팝 제작 시스템으로 탄생했다. 멤버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팬 투표 등을 거쳐 약 12만명의 경쟁자를 뚫고 최종 데뷔조에 들었다. 이 과정에서 칼 군무, 월말 평가 등 한국식 연습생 훈련을 받았다. 팬 플랫폼 ‘위버스’를 통해 팬과 소통하고 소셜미디어 챌린지나 자체 콘텐츠로 홍보하는 방식도 다른 K팝 아이돌과 비슷하다.
그러나 주 활동지나 들고 나오는 노래를 보면 K팝으로 보기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캣츠아이는 멤버 윤채만 한국인이며 다니엘라·라라·메간은 미국, 마농은 스위스, 소피아는 필리핀 국적이다. 히트곡 ‘가브리엘라’(Gabriela) ‘날리’(Gnarly)를 비롯해 발매한 노래 전부 영어로 부른다. 한국 음악 방송에도 출연한 적 있으나, 주 활동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이다.
팬 반응도 한국보다 미국에서 뜨겁다. 지난 여름 대형 음악 축제인 ‘롤라팔루자 시카고’ 무대에 서면서 ‘Gabriela’가 역주행했고, 이 곡은 지난주 빌보드 ‘핫 100’ 37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캣츠아이가 크게 주목받은 계기도 미국 청바지 브랜드 ‘갭’ 광고를 통해서였다.
◇캣츠아이 “팝이냐 K팝이냐 둘 중 하나 고르기 어려워”
K팝 요소가 섞인 미국 현지 걸그룹이라는 특성 때문에 K팝 팬들 사이에선 ‘캣츠아이를 K팝 그룹으로 분류할 것인지’를 묻는 글이 온라인상에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이번 그래미 후보가 발표된 직후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근데 캣츠아이가 K팝 아이돌인가” “노래 장르도 K팝인지 모르겠던데” “캣츠아이 외국에서도 K팝으로 분류되나” 등의 글이 올라왔다.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다 보니 K팝 아이돌 선배가 이들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소녀시대 효연과 비투비 창섭은 지난 8월 한 유튜브에서 샤이니 키가 캣츠아이를 언급하자 “캣츠아이가 뭐야?” “노래 이름이야?”라며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문 커뮤니티 레딧에서도 “K팝 코스프레” “서양 아이돌”이란 반응과 “한국어로 노래를 안 할 뿐 장르는 K팝 스타일” 등 엇갈린 의견이 나오고 있다.
캣츠아이는 자신들이 K팝 그룹이라고 명확히 규정하지 않는다. 멤버 소피아는 한 유튜브에서 “우리는 팝과 K팝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다. K팝 쪽에선 데뷔 전 연습생 생활을 거친 것이 정말 컸다. 음악을 내는 방법과 홍보 방식은 K팝 영향을 받았고 여기에 서양 스타일이 뿌려진 것”이라며 “둘 중 어느 장르냐를 물으면 한쪽을 고르기 어렵다. 캣츠아이다운 가장 좋은 방식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美 언론 다수 ‘K팝 그룹’으로 소개… “K팝 장르로 보긴 어려워” 의견도
미 현지 언론은 캣츠아이를 소개할 때 ‘K팝 그룹’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미 어워즈를 방송하는 미 CBS는 캣츠아이에 대해 “K팝 스타를 모델로 한 글로벌 걸그룹”이라고 했다. 이 매체는 “멤버들은 엄격한 K팝 연습생 과정을 거쳤다. 노래, 춤, 외국어 등 다재다능한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집중적으로 훈련받았다”며 “음악은 영어로 부르지만 여섯 멤버는 다양한 문화권을 아우르고 있다”고 했다. 이어 “데뷔 전부터 미국 업계 엘리트들의 지원 사격을 받았다. 데뷔 곡 ‘Debut’는 밴드 원 리퍼블릭의 리더이자 싱어송라이터 라이언 테더가 프로듀싱했으며 그룹 콘셉트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겐조에서 활동한 움베르토 리온이 관여했다”고 설명했다.
LA타임스는 이번 그래미 주요 부문 후보에 캣츠아이와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APT.)’,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올랐다는 기사를 내며 메인 사진으로 캣츠아이를 내걸었다. 그러면서 “K팝 그룹(캣츠아이)은 마침내 신인상 후보에도 선정됐다. K팝의 본질을 글로벌하게 재해석한 그룹”이라고 했다.
다만 CNN은 캣츠아이를 조명하는 기사에서 ‘K팝’ 수식어를 빼고 보도했다. CNN은 “그룹의 결성과 훈련 과정에는 K팝의 요소가 일부 반영됐지만 멤버들은 다양한 뿌리를 반영해 스스로를 ‘글로벌 그룹’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K팝 장르는 경쾌하고 발랄한 댄스 음악, 반복되는 후렴구라는 특징이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한 선발 과정, 음악 장르, 안무 등을 고려했을 때 캣츠아이는 K팝 장르로 보는 게 맞다”고 했다.
이어 “현재 K팝은 마니아 팬층에서 외연을 확장하는 단계여서 현지 업계와의 협업이 중요하다. K팝을 강조하는 것이 마치 ‘국뽕’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영국에 브리티시팝이 있듯이 K팝 자체를 하나의 장르로 브랜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진모 음악 평론가는 “캣츠아이의 발상지가 K팝이긴 하나 이들의 곡이 통상적인 K팝인지에 대해선 생각할 여지가 있다. 최근 빌보드에 오른 가브리엘라는 라틴팝에 가깝다”며 “캣츠아이는 미국 현지화 그룹이고, 그래미 어워즈 신인상 후보에 오른 것도 미국 현지 그룹으로서 미국 음악이 갖는 포괄성,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엄밀히 따지면 캣츠아이는 K팝 그룹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미 어워즈 후보에 오른 건 하이브 현지화 전략의 승리”라고 했다.
한편 제68회 ‘그래미 어워즈’는 내년 2월 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다. 캣츠아이 외에도 이번 그래미 어워즈에는 로제의 ‘APT’가 본상 부문인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를 포함한 총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데헌의 OST ‘Golden’도 ‘올해의 노래’를 포함해 총 5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래미 어워즈를 주최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는 부문별 후보를 대상으로 12월 12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최종 투표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