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인 줄 알았는데 숨 쉬는 것처럼 닥스훈트의 배가 위아래로 움직여요. 이 기름진 털이랑 촉촉한 코까지 진짜 살아있는 것 같아요.”
“어딜 가도 포토존이에요. 독특한 외관부터, 새로 연 미술관에 온 것 같은데 사옥이라니….”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대형 건물 ‘하우스 노웨어 서울’.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와 화장품 ‘탬버린즈’ 등을 운영하는 기업 아이아이컴바인드가 지난 9월 초 대중에게 공개한 신사옥이다. 풍만하고 유려한 곡선의 하층부와 콘크리트 기둥이 사방팔방 뾰족뾰족 드러난 중층부, 돌출형 전망대 같은 상층부 등 연면적 3만700㎡(약 9290평) 규모의 14층 건물.
최근 찾아간 이곳은 오피스 공간으로 쓰는 중·상층부 외에 1층부터 5층까지는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여러 브랜드 매장이 들어와 있었다. 새 제품이 나올 때마다 ‘오픈런’이 수시로 벌어지는 공간에 마치 현대 미술관에 온 듯 대형 조형물과 실험적 미디어 아트 작품이 곳곳에 배치되어 낯선 느낌을 준다. 해외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미술관·로봇전시장·매장…‘어디에도 없는 공간’
‘하우스 노웨어(Haus Nowhere)’는 의미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집’을 말한다. 유명 건축가 김찬중 소장의 더시스템랩 설계로 8년에 걸쳐 완공됐다. 마치 외계에서 온 우주선처럼 기존에 보지 못한 외관으로 오픈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김 건축가는 일반 콘크리트보다 강도가 최대 10배 높은 신소재 초고성능 콘크리트(UHPC)를 적용한 리조트 ‘코스모스 울릉도’(2018), 유리보다 빛 투과율이 우수한 신소재 특수 비닐(ETFE)을 이용한 마곡동 ‘서울식물원’ 등 실험적 공법을 통해 다양한 랜드마크를 설계해 왔다. 이번 젠틀몬스터 사옥 역시 성수동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건물 외관뿐 아니라 내부도 ‘낯선 새로움’을 선사한다. 2011년 목욕탕을 개조한 쇼룸(매장 겸 전시장)을 선보이며 젊은 층을 사로잡았던 젠틀몬스터의 이력이 그대로 농축되어 있다는 평가. 예컨대 건물 1층에 있는 대형 닥스훈트 작품은 2017년 로봇 회사 위저드를 인수해 만든 창작 집단 ‘젠틀몬스터 로봇랩’이 보유한 애니매트로닉스(애니메이션+일렉트로닉스)를 이용해 살아 있는 느낌을 준다. 계열사 탬버린즈의 신제품 향수 홍보를 위해 제작된 조형물. 이 향수에는 닥스훈트가 꿈에서 빛나는 갑옷을 입고 숲을 질주한다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데, 이를 시각화했다는 것. 2층 매장에선 호주 출신 세계적인 미술가 론 뮤익의 작품을 보는 듯 거대한 인체 조형물에 압도된다. 독일에서 여행을 왔다는 미아(24)씨는 자신을 “젠틀몬스터의 브랜드 앰버서더인 필릭스의 팬”이라고 밝히면서, “소셜미디어에서 본 것보다 실제로 보니 더 상상을 초월해 행복하다”고 말했다.
◇젠틀몬스터에서 시작된 도발적 건축…‘사옥 핫플’ 시대 열다
Z세대에게 ‘팝업스토어(임시 매장) 성지’로 각광받던 성수동은 이제 컬처·테크·정보기술 분야 등 젊은 층에 친숙한 기업들의 사옥이 몰려들어 ‘사옥 핫플(핫 플레이스)’ 시대를 열고 있다.
성수동에 본사가 있는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최근 성수역 병기권(지하철역 이름 옆 기업명을 함께 표기할 권리)을 확보해 ‘성수역(무신사역)’ 브랜딩에 나섰다. 계약 기간은 3년으로, 이르면 12월 전에 ‘성수역(무신사역)’ 팻말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게임 회사 크래프톤은 옛 성수동 이마트 부지에 연면적 21만8093㎡(약 6만5973평), 지하 8층, 지상 17층의 대규모 사옥을 2028년 준공 목표로 건설 중이다.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디자인했고 빛을 활용한 건축 기법 혁신으로 2023년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 상을 받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를 맡았다. 이 외에도 ‘랜덤다이스’ ‘운빨존많겜’으로 젊은 층을 사로잡은 국내 게임 개발사 ‘111퍼센트’ 역시 연무장길 인근에 전용 약 4300㎡ 규모의 단독 사옥으로 이전을 확정하는 등 실험적 사옥의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프랑스 경영 전문 대학 인시아드의 데이비드 뒤보아 교수는 분석 보고서에서 젠틀몬스터를 K컬처 성공의 모범 사례로 소개하며 “소비자들이 감각적 경험(sensory experience)에 흠뻑 빠져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K브랜드 생태계의 핵심이며, 한국이 국제 무대에서 문화 강국으로 부상하는 주요 동력”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