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노트]는 청와대, 부장검사 출신의 김우석 변호사가 핫이슈 사건을 법률적으로 풀어주고, 이와 관련된 수사와 재판 실무를 알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그룹 뉴진스. /뉴시스

지난달 30일 그룹 뉴진스는 소속사 어도어와의 1심 소송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뉴진스가 어도어와 체결한 전속 매니지먼트 계약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뉴진스를 둘러싼 분쟁과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뉴진스의 전속 계약을 중도 해지시켜 어도어에 손해를 끼치려 했다는 혐의(업무상 배임)로 고소당한 사건은 올해 7월 경찰에서 무혐의로 결정됐지만, 어도어의 이의신청으로 검찰에서 수사 중이다. 이번 판결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의미와 전망을 짚어보자.


Q. 뉴진스가 1심에서 패소한 이유는 뭔가요?


A. 1심 법원은 뉴진스가 어도어와의 ‘전속 계약을 해지할 만한 사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뉴진스는 어도어와의 전속 계약을 해지하고 민 전 대표와 함께 연예 활동을 하기를 원했지만, 법원은 이를 전속 계약 위반이라며 제지한 것입니다.

법원 판결은 연예 기획사의 투자로 성공한 연예인이 전속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계약을 함부로 해지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이를 자유롭게 허용하면 실패 위험을 감수하고 많은 시간과 자금, 인력을 투자한 연예 기획사에 매우 불공정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Q. 뉴진스 측에서 어도어와 함께 일할 수 없다고 주장한 10가지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통상 민사소송에서는 당사자의 일부 주장을 받아들여서 ‘일부 승소’ 판결이 나기도 하는데요, 이번에는 왜 그렇지 못했던 건가요?


A. 이번 사건은 뉴진스가 어도어를 떠나느냐, 못 떠나느냐의 문제입니다. 본질적으로 100% 이기거나, 100% 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일부 승소와 같은 형태로 판결이 나지 않은 것입니다. 뉴진스가 주장한 10가지 이유 중 하나라도 법원이 받아들였다면 뉴진스는 어도어를 떠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1심 법원은 뉴진스의 10가지 주장(▲뉴진스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총괄 프로듀서인 민 전 대표를 부당해임해 프로듀싱 공백을 초래했고 ▲민 전 대표가 없어 매니지먼트 업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으며 ▲하이브 산하 다른 레이블의 신인 걸그룹 ‘아일릿’의 뉴진스 컨셉 도용을 방치했고 ▲하이브로부터 차별ㆍ홀대받는 뉴진스를 보호하지 않았으며 ▲뉴진스의 성과가 폄하ㆍ모욕 당해 인격권이 침해되었다는 등)이 모두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어도어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뉴진스로서는 뼈아플 것입니다.


Q. 그렇다면, 뉴진스는 왜 다른 문제가 아닌 어도어와의 ‘신뢰 관계 파탄’을 이유로 소송을 걸었나요?


그룹 뉴진스가 작년 11월 28일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쉐어 삼성역센터에서 어도어와의 전속계약 해지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A. 계약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약할 이유가 없습니다. 계약을 믿고 그 후의 행보를 이어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법률은 계약 쌍방 당사자에게 상호 간 계약 이행을 강제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당사자 일방이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그 상대방은 법률에 호소해서 계약을 강제로 이행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면, 계약을 무효화시켜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가 계약 해지입니다. 계약이 해지되면 그 시점 이후부터 더 이상 계약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계약을 해지하려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해지 사유는 ‘채무 불이행’처럼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것도 있고, 당사자 간의 약정으로 정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A라는 상황이 생기면 계약을 해지한다’고 약정하는 경우입니다.

계약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는 당사자 간의 ‘신뢰’가 매우 중요합니다. 신뢰가 없다면 계약을 장기간 지속하면서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률은 계속적 계약에서 당사자 간의 신뢰가 파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계약 해지 사유가 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때 신뢰 파탄의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다면 그에게 계약 해지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필요 없이 계약을 해지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뉴진스와 어도어 간의 전속 계약도 계속적 계약입니다. 전속 계약 기간 동안 어도어는 뉴진스의 연예 활동을 매니지먼트하고, 뉴진스는 연예 활동 수익을 어도어와 분배할 의무가 있습니다. 뉴진스가 ▲어도어와의 신뢰 관계가 파탄되었고 ▲그 책임이 어도어와 모회사인 하이브에 있다면서 10가지 사유를 주장한 것은 어도어와의 전속 계약을 해지하면서도 그로 인한 손해배상이나 위약금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뉴진스 측이 “어도어와의 신뢰 관계가 완전히 파탄 나서 정상적 연예 활동을 이어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항소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런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Q. 이번 판결이 민희진 전 대표에 대한 업무상 배임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나요?


뉴진스와 민희진(왼쪽에서 세 번째) 전 어도어 대표. /민 전 대표 SNS

A.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뉴진스가 어도어에 대한 손해배상(또는 위약금 지급) 없이 어도어와의 전속 계약을 해지하고 민 전 대표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한다면, 이는 어도어에 손해를 끼치고 민 전 대표에게는 이익을 주는 행위가 됩니다. 이러면 어도어의 대표가 어도어의 핵심 자산인 뉴진스를 빼돌려 대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 것이 되므로, 업무상 배임이 성립할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물론, 업무상 배임이 성립하려면 이것 외에 다른 요건도 충족해야 하고 관련자들의 공모·가담 관계도 살펴봐야 합니다. 업무상 배임이 인정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유형의 범죄는 “아” 다르고, “어” 다른 영역이 있어 매우 섬세합니다. 검찰에서 정확하게 수사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려주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