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거를 소환하며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드라마들이 늘었다. 1990년대 이른바 ‘압구정 오렌지족’이나 1980년대 버스 안내양까지 과거를 재현한 작품들이다. 이를 통해 부모 세대는 잊고 지냈던 청춘의 기억을, 자녀 세대에는 낯설지만 궁금한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드라마 앞에서 “우리가 저랬어”라며 웃고, 자녀들은 “그때는 왜 그랬어?”라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지난 11일 첫 방송한 tvN 토일드라마 ‘태풍상사’는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배경으로 한다. 서울 압구정동 일대에서 흥청망청 놀던 강태풍(이준호)이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도산 위기를 맞은 회사를 이어받으며 펼쳐지는 성장기. 삐삐(무선호출기), 카세트테이프, 텔렉스(인쇄전신 교환장치) 등 그 시절의 아날로그 물건과 더불어 당시 사무실 풍경을 담은 화면과 자막까지 90년대 감성으로 재현했다. 부모 세대는 자신과 닮은 ‘상사맨’의 고단함을 떠올리고, 젊은 시청자들은 “진짜 저렇게 일했나”라며 호기심을 보인다. 시청률은 1회 5.9%에서 시작해 8~9%를 오르내리고 있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 드라마도 있다. 지난달 13일부터 지난 19일까지 방송했던 JTBC ‘백번의 추억’은 생계를 위해 버스 안내양으로 일하던 청년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려낸다. 음악다방, 교복 미팅 등 현재 중장년층의 학창 시절로 시곗바늘을 돌린다. 올해 공개된 넷플릭스 ‘애마’(80년대 충무로), 디즈니플러스 ‘파인’(1977년 서울·목포)도 사실상 1970~80년대를 무대로 펼쳐지는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MBC ‘놀면 뭐하니?’가 이른바 ‘80’s 엠비시 서울가요제’ 특집을 통해 박남정, 조용필의 그 시절 히트곡을 소환하기도 했다.
복고 콘텐츠가 다시 부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콘텐츠 시장이 과열되는 상황에서 이미 검증된 소재를 활용하면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고, TV 시청자들의 세대별 감정 코드가 다른 만큼 과거를 매개로 공감대를 넓히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에게는 아날로그가 오히려 ‘신선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복고 콘텐츠는 단순히 옛 추억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세대가 대화할 수 있는 공통어가 된다”며 “중장년층의 기억과 청년층의 호기심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장르여서 앞으로도 세대 융합형 콘텐츠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