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오른쪽)과 배우 이병헌. /뉴스1

배우 이병헌이 25년 전 처음 박찬욱 감독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지난 24일 오후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통해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박 감독과 이병헌이 함께 출연했다.

두 사람은 앞서 2000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지금은 대한민국 영화의 상징이 됐으나, 당시에는 긴 무명생활을 헤쳐나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박 감독은 영화 두 편, 이병헌은 영화 네 편의 흥행에 실패한 상태였다. 박 감독은 평론가, 방송 출연, 비디오 대여점 운영을 통해 그 기간 생계를 이어나갔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당시 이병헌에 대해 “흥행에 목말랐던 때라 다들 걱정하는 이 사람(이병헌)을 데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병헌은 “감독님이 더 심각한 상태였다”고 반박했다.

그는 “저는 네 번까진 망했지만 다섯 번째 영화 ‘내 마음의 풍금’으로 조금씩 사랑받고 있을 때였다”라며 “하지만 감독님은 앞의 두 작품을 너무 심하게 망쳐서, 충무로에 ‘과연 저 감독에게 다음 기회가 있을까’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했다.

이병헌은 세 번째 영화인 ‘그들만의 세상’ 기술 시사를 하던 날 박 감독을 처음 만났다고 회상했다. 그는 “조감독이 ‘어떤 감독님이 기다리고 계신다’고 해서 나가보니 어떤 분이 코트를 입고 말총머리 헤어스타일을 한 채 극본을 들고 서 있더라”라며 “겉모습만 봐도 비호감이라고 생각하면서 인사했다”고 했다.

당시 박 감독은 자기소개를 한 뒤 “시나리오를 하나 썼는데 다음 작품 같이하고 싶으니 읽어봐 달라”고 말하며 극본을 내밀었다고 한다. 이병헌은 “앞의 두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서, 그때는 ‘함께하기 힘들 것 같다’고 거절했다”라고 했다.

이병헌은 그 이후 TV활동을 하다 군대를 뒤늦게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는 “소집 해제되기 얼마 전 매니저가 시나리오를 줘서 감독이 누군지 보지도 않고 읽었다”라며 “정말 재밌어서 확인하니 박찬욱 감독이었다. 포니테일의 모습이 떠올라 고민했는데, 시나리오를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 만났다”고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감독님은 그만두면 뭘 해야 할지도 생각한 것 같다”며 “우리 엄마가 싸준 김밥을 들고 촬영장에서 먹었다. 감독님이 진짜 진지하게 ‘만약 어머니가 김밥집 1호점을 차리면 2호점은 나한테 줄 생각 없느냐’고 하더라. 항상 위태롭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박 감독은 “실제로 창업도 생각했다. 세 편째 망하면 다음은 기회가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걱정과는 달리 ‘공동경비구역 JSA’는 흥행에 성공했다. 대중성은 물론 작품성까지 잡아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고, 두 사람의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박 감독은 “믿기지 않았다, 실감하는 데까지 오래 걸렸다”고 했고, 이병헌 역시도 “저도 신기했다. 수시로 틈만나면 극장을 찾아가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봤다”고 했다.

한편 ‘어쩔수가없다’는 해고된 직장인 만수가 재취업을 준비하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만의 전쟁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베니스국제영화제와 토론토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화제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