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쉬운 한글을 개발하고 백성에게 보급한 세종대왕. 유네스코는 이 업적을 기려 문맹률 감소에 기여한 단체에 ‘세종대왕 문해상’을 수여하고 있다.
우리는 세종을 흔히 만원권 지폐에서 만나는데, 얼굴은 세종 영정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하지만 이는 실제 모습이 아니고 화가가 자료와 상상을 바탕으로 그린 가상 얼굴이다. 세종의 초상화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처럼 실존 모습을 알 수 없는 경우, 국가가 표준 영정을 만든다. 세종 것은 1973년 화가 운보(雲甫) 김기창이 역사학자 의견에 상상력을 가미해 그렸다. 표준 영정은 가상 인간 탄생과 같은 것이기에, 춘향 영정처럼 매번 타당성 논란을 일으킨다. 세종 영정도 그랬다.
‘세종은 강직성 척추염을 앓았다’는 논문을 국제관절염학회지에 발표한 이지환 명지병원 정형외과 교수의 의견은 표준 영정 모습과 다르다. 이 교수는 “강직성 척추염은 대사 소모성 질환이기에 53세에 승하하기 전의 세종 모습은 좀 더 살이 빠져 있고, 목이 뻣뻣하고, 허리가 앞으로 살짝 굽어져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직성 척추염은 류머티스 관절염처럼 자기 면역세포가 자기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성 질환이다. 강직성이란 말 그대로 척추뼈들이 염증으로 서로 붙어서 뻣뻣해지고 굳는다.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의복을 기록한 상방정례 등을 분석하여 작성한 이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세종은 20대에 무릎 통증을 호소했고, 30대에는 허리 통증을 앓았다. 나중에 세종은 허리와 등이 굳고 꼿꼿하여 굽혔다 폈다 하기조차 어렵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관절염이 위로 올라가며 진행되는 강직성 척추염 증세와 같다.
이 교수는 “세종은 40대부터 눈이 흐릿하고, 까끌거리고, 따가운 증상이 심했다고 호소했는데, 이는 강직성 척추염 환자의 절반 이상이 앓는 눈의 포도막염 증세와 같다”며 “아침에 허리가 더 아프고, 움직이면 좋아지는 요통이 있다면 강직성 척추염을 의심하고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왕으로서의 삶도 몸도 강직한 세종, 어찌됐건 많은 이들이 인자하고 근엄한 지금의 모습을 실제 세종대왕인 양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러면 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