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부자순위 2위였던 넥슨 창업주 김정주(당시 54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회사측은 고인이 오랜 기간 우울증 치료를 받아 오다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평소 우울하거나 잠이 안온다고 자주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약은 치료에 꼭 필요한 요소지만 약에 의존해서 병을 치료하겠다는 생각보다, 약과 함께 스스로 치유해나가겠다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출처=셔터 스톡

우울증을 극복한 경험담을 책으로 낸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우울증에 약을 꼭 먹어야 하는가라는 것이었다. 의사가 아닌 경험자로서 나의 답변은 항상 ‘Yes’와 ‘No’ 두가지 다였다.

우선 우울한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약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극복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소화가 안되거나 잠이 안온다고 소화제나 수면제를 먹는 습관을 들인다면 바람직스럽지 않듯이 단지 우울한 감정을 약을 통해 극복하려는 것도 좋지 않다고 본다.

심리적은 물론 신체적으로도 약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신체의 자연적 치유기능의 감퇴로 이어질 수 있다. 약보다는 스스로 스트레스를 줄이고, 생활습관을 고쳐나가며 심신을 강건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진짜 상황이 중한 경우는 어떠한가. 소화가 안되거나, 잠을 제대로 못자는 상황이 자주, 장기간 계속 된다면 당연히 병원에 가고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이 바른 선택이듯이 우울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울증도 그냥 놔두면 불안, 강박, 피해망상, 조현병 등 신경・정신질환이나 다른 신체적 질환으로 확대될 수 있다. 그럴 경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막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렇다면 우울증은 어느 정도에서부터 병원에서 치료받고 약을 먹어야 할까.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기준을 보면 2주 이상 ▲우울 ▲무기력 ▲자책감 ▲불면 ▲과다수면 등이 계속될 경우 우울증 질환으로 간주한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잠을 2주 이상 못잔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신체・정신적 위험상황이다. 신체의 자율신경계가 정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바람에 심신이 쉬지 못하고, 그로 인한 후유증은 아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사람은 24시간 중 8시간은 잠(휴식)을 자야 하는데 240, 480시간 계속 잠을 못잔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 경우 우울한 기분이 본격적으로 우울증으로 바뀐 것도 아예 잠을 못자게 되면서부터다. 그전까지 비몽사몽 잠을 자긴 했지만 24시간 잠을 못자게 되니까 대책이 없었다. 누군가 몸을 피로하게 만들면 잠이 저절로 온다고 해서 하루 종일 수십km 걸어다닌 적도 있었다.

그러나 누우면 다시 ‘말똥말똥’해지며 지옥 같은 불면증 나날이 지속됐다. 속된 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당연히 작동해야 할 부교감신경계(휴식 담당) 대신 교감신경계(활동 담당)가 계속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힘든 것을 견디다 못해 동네 정신과를 처음 찾아가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먹고 푹 잘 수 있었다. 그러나 약에 의존하는 것을 워낙 싫어하는 성미라 3일 먹고 다시 끊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다시 불면증이 시작됐고 마음은 먹구름속에 들어갔다.

점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졌다. 머리가 워낙 산만해 신문도 읽기 어려웠고, 음식도 먹기 싫고, 나가기도 싫고, 모든 것이 다 귀찮았다. 마음을 굳게 먹고 근처 산을 올라가려고 갔다가 몸에 진이 빠져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었다. 실제 비오듯 땀을 흘리고, 아랫배에 진통이 나며,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며, 사람들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정신질환으로 악화될 수 있다.)

그때 전후에 공교롭게도 KBS-2TV <아침마당> 시간에 한시간짜리 생방송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마음이나 두뇌 컨디션이 엉망인 상태로 나가서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실수없이 했고 시청률은 6% 넘게 나왔다고 한다. 이토록 우울증은 겉으로는 잘 모르는 병이다. 그날 방송을 마치고 나는 이틀간 앓아누웠다. 한껏 약해진 심신 체력으로는 한시간 강연도 무리였던 것이었다.

점점 늪에 빠져가는 듯해서 용하다는 병원을 소개받아 거기서 약을 처방받고 먹기 시작했다. 의사는 치료를 잘 받으면 나을 수 있으며, 약을 마음대로 끊지 말 것, 긍정훈련 등 인지행동 치료를 열심히 해줄 것 등을 당부했다.

그때 내가 받은 처방전이 하루 기준▲항우울제=렉사프로 10mg ▲수면제=스틸녹스 10mg ▲항불안제(진정제)=렉토팜 1.5mg 2회, 인데놀 10mg 2회 였다.

약을 먹었더니 금방 좋아졌다. 마음이 유쾌해지고, 잠도 잘잤다. 180까지 치솟던 혈압이 120으로, 분당 100회까지 올라가던 맥박수도 60회 정도로 떨어져 정상수치를 보였다.

나는 이것이 약기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상황을 극복하려면 현재 비정상적인 몸-마음 신체기능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약 없이도 잠 잘 자고, 불안해 하지 않고, 기쁨을 되찾는 예전의 나로 되돌아갈 수 있다.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과 함께 치료를 받으면서 나는 매일 1시간씩 자전거 타는 운동을 했다. 운동은 건강을 되찾게 하는데 어떤 약, 보약보다 더 강력한 수단이다. 운동을 통해 나는 최소 1년은 먹어야한다는 우울증 약을 3개월만에 끝냈다. /출처=셔터 스톡

나는 약과 함께 운동을 택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한강변을 따라 한시간씩 자전거를 탔다. 처음 며칠은 페달 밟는 것조차 힘에 겨웠지만 곧 체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조깅을 했다. 주말이면 등산을 하거나, 친지들과 어울려 4~6시간 자전거를 타며 경기도 팔당, 양수리, 분당, 행주산성, 아라뱃길을 왕복했다. 시간이 나면 혼자 단전호흡이나 스트레칭을 해 심신을 이완했고 산보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초여름 날씨에 땀을 흘리면서 한 운동의 효과는 대단했다. 우울증으로 축 처져 있던 인체기능이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맞은 듯 살아나 심폐기능・혈액순환・근육 운동 등 신체의 모든 기능이 활성화됐고,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행복감’이 부활했다.

의사는 급속도로 체력이 회복되는 것을 보며 놀라며 약을 진정제-수면제-항우울제 순으로 줄여나가다가 결국 여름이 끝나갈 무렵, 3개월만에 약을 다 끊고 ‘완쾌’를 선언했다. 당초 최소한 1년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줄어든 것이다.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혀 약을 먹지 않고 있다. 그래도 될만큼 신체적-정신적 면역력 내지 근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의사는 간혹 증세가 오면 일시적으로 약을 먹으라고 했지만 그런 증세는 오지 않았다.

이제는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로 지치다 싶으면 미리 신호를 알아채 해결하는 지혜도 갖췄다. 쉬거나, 나를 즐겁게 해주는 일을 찾게 됐으며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운동이다. 어떤 항우울제, 보약보다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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