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불란서 파리의 카바레 물랭루주 장면과 인물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년). 그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어른이 되어도 다리가 짧아 키가 매우 작았다. 불완전한 골형성으로 조금만 다쳐도 골절상을 입었다.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걷지도 못하고, 앞으로 쓰러지는 신세가 됐다.

툴루즈 로트레크

다양한 유전적 결함으로 재발성 부비동염, 두통, 시각· 청각 장애도 가졌다. 현대 의사들은 이런 장애 집합을 ‘로트레크 증후군’으로 부른다.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어 170만명에 한 명꼴로 태어난다. 유전자 돌연변이를 엄마와 아빠 둘 다한테 받아야 이런 기형이 생긴다. 로트레크의 엄마와 아빠는 사촌 간이었는데, 근친 결혼이 그런 가능성을 높인다. 로트레크의 기형과 장애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여러 신체적 취약성 때문에 로트레크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음에도 귀족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렇게 억압된 에너지는 그림으로 표출됐다. 평론가들은 로트레크 그림 속 구불구불한 선과 역동적인 댄스 장면은 그가 꿈꿨던 육체적인 운동성을 나타낸다고 평한다. 로트레크 증후군 환자들은 골절 우려 때문에 남과 부딪힐 수 있는 운동을 하면 안 된다.

호화롭고 우아한 생활에서 소외된 젊은 예술가를 도시의 거친 밤 문화가 품었다. 로트레크가 26세에 그린 <물랭루주에서의 댄스>. 빨간 양말을 신은 무용수의 춤 동작에서 몽마르트르 댄스 홀의 속 모습과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는 나이트클럽 포스터나 광고도 많이 그렸는데, 당시 전통 화가의 작품보다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훗날 로트레크의 그런 작업은 예술적 경계를 초월한 시도로 칭송받는다. 광고를 예술로 격상한 팝 아트 시초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당대는 로트레크를 이방인 취급했다. 아버지도 그를 냉대했다. 술집과 매춘업소를 맴돌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알코올중독과 매독 합병증으로 36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림은 그에게 장애를 창의성으로 연결한 치유 도구였으니, 로트레크는 느낌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