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표적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여성의 자태와 누드를 묘사하는 데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지녔다. 따스한 색채로 포근함을 표현했다. 그는 “그림이란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1884년에 3년에 걸쳐 그린 ‘목욕하는 여인들’에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풍만한 육체, 윤기 나는 머릿결 등을 표현한 섬세한 붓 터치가 눈길을 잡는다.
그랬던 그가 질병으로 그림 스타일이 바뀐다. 50대부터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기 시작했다. 손가락 마디 관절 활막이 염증으로 두꺼워지고 뒤틀렸다. 나중에는 붓을 손에 쥘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창작열은 식지 않았다. 비틀어진 손가락 사이에 붓을 넣고 끈으로 묶어 맨 채 통증을 이겨내며 캔버스에 붓을 찍듯이 그림을 그렸다.
‘목욕하는 여인’을 77세인 1918년에도 그렸는데, 그전 그림과 완전히 다르다. 선이 거칠고, 배에도 지방이 고여서 주름이 잡혀 있다. 여인들보다 황혼 같은 붉은 배경이 더 두드러진다. 손가락 마디가 염주 알처럼 굵고 손가락이 뒤틀린 류머티스 관절염 후유증 탓일 게다.
화가 르누아르는 의과대학 류머티스 관절염 강의 시간에 대표적 환자 사례로 등장한다. 자기 면역세포가 자기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으로 4대1 정도로 여자에게 많다. 주로 30대에 생긴다. 드물게는 르누아르처럼 50~60대에 진단받는 남성도 있다. 배상철 한양대 류머티스병원 교수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좌우 대칭으로 손발이 뻣뻣하고 아프다가 낮이 되면서 증세가 조금 나아지는 듯한 게 류머티스의 전형적 증상”이라며 “이런 상태가 한두 달 지속되면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침에 관절이 붉어지는 조조 발적도 특징적 류머티스 증상이다. 배 교수는 “염증 매개 물질에 대한 생물학적 작용을 하는 주사제가 치료에 큰 진보를 가져다 줬고, 최근에는 먹는 약으로 중증 상태를 조절한다”며 “르누아르가 요즘 환자였다면 관절 변형이 생기기 전에 관리받아 섬세한 그림을 더 많이 남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르누아르의 말년 그림을 더 좋아하는 애호가도 많으니, 인생은 고단해도 예술은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