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 동안 한국인의 삶을 고달프게 하는 질병 순위가 크게 바뀌었다. 인구 고령화로 골관절염, 낙상 등 근골격계 질환과 치매, 우울증 등 신경계 질환이 크게 올랐다. 반면 천식, 교통사고 손상, 위장염 등은 하락세를 보였다. 사회 변화가 몸에 전달되는 형세로, 다이내믹 코리아는 한국인의 질병 지도 변화에도 나타난다는 평가다.
◇뜨는 질병, 지는 질병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윤석준 공동연구팀은 2008년과 2018년 한국인 질병 부담 지표를 비교 조사하는 연구 논문을 최근 ‘예방의학 및 공중보건 학술지’에 발표했다. 질병 부담은 특정 질병으로 인해 시달리고, 장애로 고생하고, 조기 사망하게 되어 발생하는 손실을 종합 분석하여 계량화한 지표다. 수치가 높을수록 그 질병으로 삶이 고달프다는 의미다. 암(癌)은 완치되면 장애 없이 살아가기에 퇴행성 골관절염병처럼 장애를 일으키며 오래가는 질병보다 질병 부담 지표가 낮다.
연구팀은 한국인이 흔히 걸리는 288개 질병을 대상으로 질병 부담 지표 순위를 매겼다. 이 작업을 위해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 중앙암등록본부 통계, 통계청 사망자 자료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2008년과 2018년 공히 질병 부담 1위는 당뇨병이다. 당뇨병이 그만큼 오랜 기간 합병증을 겪으면서 삶을 힘들게 한다. 2위부터 20위에서는 순위가 요동을 쳤다. 척추관 협착증, 디스크 탈출증 등으로 인한 요통이 4위에서 2위로 뛰어올랐다. 퇴행성 골관절염, 낙상도 순위가 눈에 띄게 올랐다. 치매는 20위 밖에 머물러 있다가 2018년부터 9위로 올라섰다. 우울증, 치주 질환, 전립선 비대증, 폐암 등도 순위가 높아졌다.
이는 고령화와 연관 있다. 2008년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10.3%였다. 2018년에는 14.4%로 뛰어올랐다. 올해는 16.5%로 해가 갈수록 상승 곡선이 가파르다. 이를 반영하듯, 질병 부담은 주로 퇴행성 근골격계 질환과 신경계 질환 위주로 높아졌다. 폐암이 높아진 것은 1980년대와 1990년대 높은 흡연율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천식은 2위에서 14위로 낮아졌다. 교통사고 손상, 위장염 등도 순위가 떨어졌다. 교통 안전 의식이 높아졌고, 헬리코박터 감염률이 떨어진 덕으로 보인다. 위궤양, 고혈압성 심장 질환, 충치, 위암 등은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약물 치료가 좋아지고, 의료 환경이 개선된 덕으로 본다.
◇질병 부담 순위로 건강관리 치중
건강 장수를 누리려면 질병 부담 순위를 참조하여 건강 관리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그래픽 참조>.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국민의 질병 부담은 약 17% 증가했다. 오래 사는 기간이 늘면서 질병으로 고생하는 정도도 커진 것이다. 통상 여자들의 질병 부담이 남성보다 높았는데, 2017년부터는 남자에게서 더 높아졌다. 남자들도 오래 살게 됐지만, 질병으로 더 많이 시달린다는 얘기다.
당뇨병(1위)은 적정 체중 유지와 규칙적인 땀 나는 운동, 하루 만보 걷기 등을 통해 예방할 수 있다. 정기적인 공복 혈당 검사로 조기 발견할 수 있다. 통상 공복 혈당이 110(mg/dL)을 넘어가면 당뇨병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척추관 협착증, 디스크 탈출증 등으로 인한 요통(2위)은 노년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여행도 못 다니고, 스포츠 활동도 줄어든다. 평소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척추 주변 근육 키우는 훈련이 필요하다. 장년 이후 척추 통증이 있다면, 척추 MRI 검사를 받아 조기 발견, 조기 대처하길 권한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3위)은 허파꽈리에 이어진 미세 기관지가 만성 염증으로 두꺼워져 들이마신 공기가 허파꽈리로 전달이 잘 되지 않는 병이다. 몸 전체가 산소 부족 상태가 되어 노화를 촉진한다. 자칫 말년에는 집에서도 산소통을 끼고 살아야 할 처지가 된다. 금연은 필수고, 미세 먼지와 실내 연기 흡입을 줄여야 한다. 폐기능 검사, 저선량 폐CT 등을 찍으면 조기 발견할 수 있다.
심근경색증 등 허혈성 심질환(4위)은 기대 여명보다 조기 사망하는 경우도 많고, 위기를 넘겼더라도 심장 박동 힘이 떨어지는 심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관절이 닳아 없어지는 퇴행성 골관절염(5위)은 무릎 통증으로 일상생활 활동 폭이 좁아지고, 나중에 인공관절 수술을 받을 수 있다. 무릎 엑스레이를 찍으면 심해진 정도를 알 수 있다. 6~10위는 뇌경색, 간경화, 낙상, 치매, 우울증 등이었다. 남성에게 심근경색증, 간경화, 폐암 등이 높았고, 여성에게는 척추관 협착증 등 요통, 골관절염, 치매, 우울증 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