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인 나는 나이 마흔이 되던 해쯤 무월경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월경 주기가 불규칙했지만, 무월경은 처음이었다. 바쁜 일상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어느 날 이유 없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거가 식은땀이 자주 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폐경’이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폐경 현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사지만, 실제 내게 조기 폐경 증상이 나타나니 적잖이 당황했다.

보통 조기 폐경은 40세 전에 무월경이 발생하는 것으로, 거의 대부분 원인을 모른다. 그나마 알려진 원인으로는 염색체 이상, 자가면역질환, 항암 치료 후 등이다. 발병률은 1% 정도다. 폐경이 되는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검사는 없다. 나는 정기 검사를 통해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수치가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월경 주기에 따른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아서 무심코 지나갔는데 나한테도 폐경이 온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이주희

폐경으로 넘어가기 전 평균 4년 정도 불규칙한 월경 패턴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처음에는 월경 주기가 짧아지고, 무배란 주기가 동반하다가 나중에는 월경 주기가 길어지고 무월경이 된다. 이런 상태가 1년간 지속될 때 폐경으로 진단을 내린다. 호르몬 검사로는 혈중 난포 자극 호르몬(FSH)과 여성호르몬 중 하나인 에스트라디올(E2)을 측정해서 진단한다.

우리나라 폐경 여성 열 중 아홉(89%)이 폐경 증상을 경험한다. 나도 그랬지만 가장 흔한 것은 안면 홍조와 식은땀이 나는 발한이다. 안면 홍조는 1년 이상 때로는 길게 5년을 가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갱년기 여성 25~50%가 우울 증상을 겪는다. 주저 말고 정신 건강 전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기억력과 인지 기능 감소도 올 수 있다.

내가 폐경 여성에게 처방했던 것처럼 내게도 적극적인 치료를 했다. 선택한 방법은 여성호르몬 보충 치료였다. 나처럼 안면 홍조가 심한 경우에 필요하다. 질 위축 증상이 심할 때는 국소적 에스트로겐 요법을 사용한다. 나는 에스트로겐 요법과 티볼론 제제를 복용했다. 폐경으로 외모 변화, 골 감소증, 동맥경화, 고지혈증, 심혈관 질환, 인지 기능 장애 등이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다고 해도 이런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에 저용량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질 위축, 질 건조, 성교통 같은 비뇨 생식기 위축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저용량 질내 에스트로겐 요법이 큰 도움을 준다.

호르몬 요법은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는 50세 전후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미 폐경으로 인한 신체 변화가 나타나기 전에 시작하면 ‘폐경 질환’ 예방 효과를 더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폐경 이후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음식이나 대체 요법보다 여성호르몬 요법이 필수다. 겁먹지 않아도 된다. 폐경기 호르몬 치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내가 복용한 티볼론은 합성 스테로이드로서, 안면 홍조에 효과적이다. 골 밀도도 높여준다. 하지만 티볼론은 60세를 넘는 고령 여성에게 권고하지 않는다. 유방암 재발률이 높아졌다는 보고도 있어서 유방암 환자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도 권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호르몬 대체재로 사용하는 좋은 약물이 많이 나와 있다. 산부인과 의사와 상담해서 자기에게 맞는 약물을 찾으면 된다.

초고령 사회는 폐경 여성 시대를 의미한다. 폐경 평균 연령은 51세로, 2030년에는 전체의 43%가 폐경기 이후 여성이다. 지난 30여 년간 산부인과 의사로 지내며, 진료실에서 수많은 갱년기 여성을 만났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과 폐경을 극복하겠다는 적극적 자세, 의학 지식 수준 등을 보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참으로 지혜로움을 느낀다. 요즘은 폐경 대신 완경이라는 말을 쓴다. 완경은 축하받을 일로서, 월경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갱년기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다. 내가 경험해본 바, 가족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아울러 적극적인 치료로 여성 수명 3분의1에 해당하는 30년 이상의 폐경 이후 삶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