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 미역국집 ‘오일제’. 오전 10시 개업 시간이 아직 남았는데도 가게 앞에 일본인 손님이 삼삼오오 기다리고 있었다. 들깨 미역국 단일 메뉴로 하루 50그릇을 파는데 일본 손님이 30그릇을 먹는다. 20대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일본인까지 남녀노소 가게를 가득 채웠다. 오사카에서 여행 왔다는 사토(43)씨는 “일본 잡지에서 이 식당을 보고 찾아왔다”며 “평생 미역 요리를 먹고 살았는데 처음 맛보는 감칠맛을 느꼈다”고 했다.
최근 일본인 관광객을 중심으로 한국 미역이 인기를 끌고 있다. 미역국을 파는 식당, 마트 가릴 것 없이 일본인 손님 맞이에 열중이다. 식품 전반의 대일(對日) 수출이 줄어드는 가운데 미역은 매년 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전체 농식품 대일 수출액은 2022년 21억5979만달러에서 지난해 20억3244만달러로 5.9% 감소했다. 반면 대일 미역 수출액은 같은 기간 1580만달러에서 2420만달러로 53.2% 늘었다.
오일제는 들기름으로 볶은 전남 고흥 거금도산 어린 미역과 한우 사골 육수로 미역국을 끓여낸다. 맑은 국물 속 해조류의 감칠맛을 한껏 끌어올렸다. 들깨 향 사이로 구수한 육수가 향의 층을 쌓는다. 다시마를 넣어 가마솥에 지은 진한 밥 맛이 시너지를 낸다. 쌀은 갓 도정한 고시히카리를 쓴다. 소박한 트레이에 낙지젓, 갓김치, 간장 소스가 함께 나온다.
지금까지 일본 매체에만 15번쯤 소개됐다. 다음 달엔 오사카에 팝업 스토어를 연다. 도쿄나 미국 뉴욕에서도 팝업 스토어를 열자는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 양식 요리만 20년 하다가 2023년 오일제를 연 신동훈(41) 셰프는 “다양한 한국인 연령대를 타깃해 준비한 식당인데 일본인 손님이 이렇게 많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관광객이 많이 찾고 호텔이 많은 압구정, 잠실 롯데타워, 종로 등의 미역국 식당 체인점들에는 최근 들어 일본어 메뉴판을 구비해 놨다. 서울역 롯데마트에는 ‘오뚜기 남도식 한우 미역국’ 등 레토르트 미역국 제품에 ‘Picked & Loved by Travelers’(여행자들에게 선택받고 사랑받는)라는 안내판이 붙었다. 오뚜기 관계자는 “최근 일본인들이 미역 제품을 많이 찾는 추세가 있어 관광객이 많이 들어오는 지점을 분석해 유통 계획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했다.
왜 미역을 찾을까. 전문가들은 ‘스토리텔링’ ‘친숙한 새로움’ ‘불안감’을 이유로 꼽았다. 먼저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점점 높아지며 단순히 유명한 한식뿐만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한국인만의 음식을 찾는다는 것이다. 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는 “한국인이 생일에 먹는 특별한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관광객에게 재밌게 느껴진다”며 “관광용 음식이 아닌 현지인들의 오리지널을 찾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와 함께 세계에서 미역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 중 하나다. 된장국(味噌汁), 맑은국(すまし汁) 등 부재료로도 많이 쓴다. 맛은 다르지만 일본식 미역국 와카메 수프(わかめスープ)도 있다. 고깃집에서 자주 먹는다. 일본 식문화는 사골이나 해물 육수도 친숙하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와카메 수프는 기름기도 덜한 데다 물에 미역을 둥둥 띄운 느낌이라 한국의 진한 국물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라며 “2023년 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 방류 이후 자국 해산물에 대한 불안과 청정 해산물에 대한 희구 심리가 강해진 것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