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 '삿포로 프리미엄 비어스탠드'에서 손님들이 서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28일 찾은 서울 성수동 ‘삿포로 프리미엄 비어스탠드’. 20평 남짓한 이 맥줏집에는 의자가 하나도 없었다. 젊은 손님 열댓 명은 옹기종기 서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일본 주류 업체 삿포로가 도쿄 긴자점에 이어 2호점을 지난 7월 서울에 냈다. 선 채로 간단히 술을 마시고 가는 ‘다치노미(立ち飮み·서서 마시기)’ 콘셉트를 가져왔다. 과거 우리나라에 있던 ‘선술집’과 비슷하지만 젊은 손님들은 생경하다는 반응이었다. 한 사람당 세 잔까지만 먹을 수 있는 가게인데도 주말에는 대기 줄이 백 명씩 늘어서기도 한다.

주류 업계 전반이 침체된 가운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맥줏집들은 Z세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서 마시고, 맥주 기계에서 직접 따라 마시고, 뮤지컬을 보며 마시는 등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서울 성수동 삿포로 프리미엄 비어스탠드를 찾은 손님들의 모습/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비어스탠드에서 파는 맥주는 두 종류다. 거품을 따로 따르느냐, 한 번에 따르느냐의 차이다. 7(맥주) 대 3(거품) 비율로 고운 거품을 따로 내는 ‘퍼펙트 푸어’ 맥주가 많이 나간다. 이곳에서 만난 김서하(25)씨는 “서서 후딱 마시고 가는 게 이국적으로 느껴지더라”며 “술을 찾아 마시는 편도 아닌데 재밌어 보여 왔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문을 연 을지로3가의 맥줏집 ‘간빠진새’도 의자가 없다. 골목 다른 술집들은 빈자리가 듬성듬성 보였지만 이 가게엔 손님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다닐 정도로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삿포로 프리미엄 비어스탠드의 모습/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여의도의 ‘탭퍼블릭’은 최근 몇 년간 젊은 직장인들의 아지트 역할을 하고 있다. 60종류의 맥주 기계에서 손님이 마치 셀프 주유소처럼 직접 잔에 따라 마신다. 입장할 때 스마트워치 같은 팔찌를 채워준다. 이 팔찌를 맥주 기계에 찍으면 원하는 만큼 따를 수 있다. 10ml당 가격을 받는데 최저 190원~최고 670원이다. 값이 싸지 않음에도 다른 곳에선 맛보기 어려운 맥주를 조금씩 다양하게 골라 마시는 장점으로 인기를 끈다. 맥주 종류는 계절에 따라 바뀐다.

여의도 '탭퍼블릭'. 입장할 때 받는 팔찌를 맥주 기계에 태그하면 맥주를 따라 마실 수 있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양조장을 갖춘 맥줏집도 이젠 서울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 만큼 늘었다. 뮤지컬을 보며 맥주를 마시는 ‘뮤지컬 펍’ 등 각종 공연을 볼 수 있는 곳도 인기를 끌며 주점과 공연장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특정 단어가 얼마나 검색되는지 알 수 있는 ‘구글트렌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와인·위스키 등 고가 주류의 검색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맥주는 약 20% 증가했다.

여의도 '탭퍼블릭'에서 직접 맥주를 따르는 모습/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는 “전 세계적으로 주류 시장이 위축돼 있지만 ‘이지 드링킹(사기 쉽고 마시기 쉬운)’의 대표 격인 맥주는 버티고 있다”며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술인 만큼 직접 찾아갈 이유를 만든 곳 위주로 Z세대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을지로3가 맥주집 '간빠진새'에서 케그(생맥주를 보관하는 용기)가 냉장고에 쌓여있는 모습/박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