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아현동 '오늘파포'의 뇨끼 파스타./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뇨키(한국 수제비와 비슷한 이탈리아 파스타)였다. 일부러 고른 건 아니었다. 그저 마지막이 될 줄 몰랐을 뿐이다. 아버지가 죽기 한 달 전까지, 매주 한 번씩 부모님과 식사했다. 그날은 아버지가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골랐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뒷좌석에 태우고 서울 망원역 뒷골목 귀퉁이 ‘리플레토레’로 갔다. 이탈리아 식당인 이곳은 길이가 짧은 ‘쇼트 파스타’를 전문으로 했다. 홀로 주방을 지키던 주인장은 일부러 어려운 길을 가려는 것 같았다.

부모님과 나는 투명한 물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물잔을 반쯤 비웠을 때 음식이 하나둘 놓였다. 방울토마토에 부라타 치즈를 곁들인 ‘카프레제와 루콜라 샐러드’는 서늘한 유지방의 단맛에 입맛이 정돈되는 듯했다. 돼지 볼살로 만든 관찰레 햄에 페코리노 치즈, 달걀 노른자를 써서 만든 ‘카르보나라 콘킬리오’는 몇 년 전 로마에서 먹던 맛이 정확히 떠올랐다. 짭짤하다는 감각의 정확히 정중앙을 맞춘 염도, 쫄깃한 식감과 씹을수록 우러나오는 감칠맛의 관찰레 햄, 소라 껍데기 모양의 짧은 파스타 콘길리오니에 얇게 코팅된 소스 면면에 제대로 된 파스타를 만들겠다는 주인장의 야심이 묻어났다.

뇨키는 감자를 으깨 치즈, 전분 등을 섞고 납작한 완자처럼 빚어 모양을 낸 뒤 고운 갈색으로 구워 냈다. 뇨키 밑에는 마늘과 페페론치노(이탈리아 고추)로 매콤한 맛을 낸 아라비아타 소스를 깔았다. 감자전과 달리 뇨키는 쫀득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저항감 없이 이가 쑥 들어가는 보슬보슬한 조직감에 감자의 정감어린 단맛을 더하고 치즈와 소금의 짠맛이 은근슬쩍 맛에 음영을 만들어냈다. “맛이 특이하네. 뭘로 만든 거니?” 아버지는 음식 하나하나 먹을 때마다 질문했고 나는 아는 한도에서 답했다. 식사를 마치면서 아버지는 홀로 서 있던 주인장에게 “잘 먹었습니다. 혼자서 수고하셨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아현역에서 추계예술대학 방면으로 한참 걸어 올라가다 보면 마을버스 종점 어귀, 기사식당 몇몇이 있을 뿐인 한적한 동네에 ‘오늘파포’라는 식당이 나온다. 경북 포항에서 영업하다 최근 서울로 올라왔다. 재래 돼지를 비롯 포항에서 올린 식재료를 주로 썼다. 지역색 강한 이탈리아 음식은 그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쓰는 것이 원칙이다. 이 식당의 지향점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통감자구이’는 단지 감자를 숯에 굽고 랜치 소스를 올렸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맛에 빈틈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장처럼 요리도 복잡하다고 깊은 뜻을 담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그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닭날개의 껍질만 남기고 그 속에 재래 돼지를 갈아 채운 뒤 숯에 구운 ‘닭날개 구이’는 일본의 꼬치구이 같기도 했다. 고수를 곁들이니 동남아 느낌도 났다. 포항산 반건조 가자미 숯불구이를 곁들인 해산물 오일 파스타는 서울 아현동을 포항 동해 바다가 보이는 풍경으로 바꿔 놓았다. 파스타를 입에 넣을 때마다 감칠맛이 해풍처럼 잔잔히 밀려 들어왔다.

뇨키 역시 구성은 단순했다. 진한 갈색빛을 띄게 구운 뇨키에 재래 돼지 삼겹살을 따로 구워 올렸다. 밑에는 크림 소스를 깔고 올리브 오일 몇 방울과 이탈리아 파슬리를 잘게 잘라 뿌렸다. 감자가 흙에서 뽑아낸 단맛은 씹을수록 그윽한 풍취를 남겼다. 그 땅에서 자란 돼지의 뱃살은 고소한 맛의 밀도가 남달랐다. 크림소스를 묻혀 뇨키를 먹을 때마다 온순한 땅과 그 위에서 살아가는 말 없는 이들이 떠올랐다. 수줍음 많은 주인은 얌전히 음식을 날랐으나 접시에 담긴 자신의 뜻과 기술은 감출 수 없었다. ‘오늘파포’에서 느낀 것처럼 식당 주인들에게 음식은 단지 생계 수단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자신의 뜻을 펼치는 도구이자 감사와 보람을 안겨주는 삶의 목적이기도 했다.

나는 매주 식사하며 아버지에게 뇨키와 같은 또 다른 세상을 알려주고 싶었다. 자식으로서의 의무감이 아니었다. 7개월 전 아버지가 죽고 가혹할 정도로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 나는 다시 알게 됐다. 아버지는 식사할 때마다 나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진정 그 시간을 즐긴 사람은 나였다는 것을. 나는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서 사랑했다는 것을. 그리고 삶의 순간순간 찾아오는 기쁨의 시간에 그 사실을 되뇌게 되리란 것을 말이다.

#리플레토레: 카프레제와 루콜라 샐러드 1만6000원, 카르보나라 파스타 1만8000원, 감자 뇨키 1만9000원. (070)8691-3698

#오늘파포: 통감자구이 8000원, 해산물 오일 파스타 2만4000원, 뇨키 파스타 2만3000원. (0507)1336-8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