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 직원이면서 두 아이 엄마인 김현경(39)씨는 올 추석 시부모를 집으로 모실 계획이다. “애들 끼니도 겨우 챙기는 실력인데, 무슨 수로 갈비찜이며 전이며 잡채 같은 전통 명절 음식으로 상을 차리겠어요? 대신 백화점에서 구이용 부위가 다양하게 들어있는 한우 오마카세 선물 세트를 배달시켰어요. 명절 음식으로 차릴 때보다 크게 비싸지도 않더라고요. 시어머니도 ‘늘 먹는 명절 음식 물린다’시며 ‘오마카센가 뭔가가 인기라는데 우리도 맛 좀 보자’며 좋아하셨어요(웃음).”
외식업계 트렌드였던 오마카세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집에서 즐기는 오마카세’란 뜻으로 ‘홈마카세’ ‘집마카세’라 부른다. 추석을 앞두고 백화점, 대형 마트 등 유통 업계와 호텔 업계는 홈마카세를 즐기는 이들을 겨냥해 구성한 한우·참치 등 선물 세트까지 내놨다. ‘오마카세(お任せ)’는 ‘맡긴다’는 일본어로, 요리사가 알아서 음식을 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본래 일본 스시(초밥) 집에서 출발했다.
오마카세가 국내에 처음 알려진 건 스시 집을 통해서지만, 다양한 면과 소스를 조합한 ‘파스타 오마카세’, 날마다 다른 코스 메뉴를 내는 ‘중식 오마카세’, 서너 종류의 원두커피를 내주는 ‘커피 오마카세’로 다양해졌다. 음식 평론가 박정배씨는 “좋아하지만 잘 모르는 음식을 전문가에게 맡겨 다양하고 확실하게 맛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오마카세가 일반 가정집까지 들어오게 된 계기는 코로나다. 그렇잖아도 예약하기 어려웠던 한우·스시 오마카세가 코로나 장기화로 제한되자, 한우·생선회 등을 집에서 홈마카세로 즐기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소셜네트워크(SNS)와 유튜브에는 홈마카세를 어떻게 준비하고 접대하고 먹었는지 자세히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일부 홈마카세 고수는 조리 솜씨가 전문 요리사 뺨친다. 모 설문 업체 차장 한모씨에게는 “돈을 줄 테니 오마카세로 맛보게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 실제 그는 1인당 6만원가량을 받는다. “받긴 하지만 재료비 건지는 수준이에요. 돈을 벌기보단 즐거워지고자 스스로 하는 일이라서요.”
홈마카세를 즐기려는 이가 모두 한씨처럼 조리에 능한 건 아니어서, 이들을 위한 홈마카세 상품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롯데마트는 최고급 한우 브랜드 ‘마블나인(Marble 9)’을 지난 3일 출시했다. 1++ 등급 한우 중에서도 근내 지방도, 육색, 지방색, 조직감, 숙성도 등이 최고 수준이라야 받는 BMS(Beef Marbling Score) 최고 등급 9번만 엄선했다. 한우 오마카세 전문점 ‘우월’과 협업해 1일 10개 한정으로 선보인 ‘마블나인·우월 홈마카세’ 세트는 SNS에서 화제가 됐다.
올해 추석 선물 세트에서도 홈마카세족을 위한 상품 비중이 커졌다. 현대백화점은 구이용 갈비와 안심·등심·살치살·토시살 등 구이용 부위로만 구성된 ‘현대 명품 한우 넘버나인’을, 신세계백화점은 ‘모퉁이우’와 협업해 등심 스테이크와 치마살·살치살·부채살을 담은 오마카세 세트를, 홈플러스는 최상 등급 ‘한우 오마카세 냉장 세트’를 내놨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20일까지 추석 선물 세트 예약 판매를 진행한 결과, 정육 선물 세트 중에서는 구이용 한우 매출 증가율이 51.7%로 한우 찜갈비 매출 증가율 17.3%보다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백화점 관계자는 “홈마카세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며 “올 추석엔 구이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처음으로 40%를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