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문 연 순대실록은 하루 순댓국을 600~700그릇, 한창 때는 천 그릇 이상도 팔았다. 그러나 자타공인, 이 집의 간판 메뉴는 ‘순대 스테이크’다. 서울 대학로 본점에서 하루 100개, 밀키트로 200개가 팔린다. 순댓국이 매출의 80%, 순대 스테이크가 10%가 조금 넘는다. 그래도 ‘스타’는 순대 스테이크다. 그걸 먹으러 전국에서 손님이 찾아오고, 이 집 ‘입소문’을 내주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대학에서 순대로 일어선 식당 순대실록은 ‘혁신’을 통해 젊은 소비자에게 다가간 경우다. 혁신의 아이콘은 ‘순대 스테이크’였다.
◇비빔밥의 미덕을 순대에 담겠다
대학로 순대실록 본점 인테리어는 모던 한옥을 떠올리게 한다. 손님도 대부분 젊다. 외래형 패스트푸드 매장 분위기가 난다. 인테리어에 어울리게 ‘순대 스테이크’는 맛은 물론 담음새가 아름답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육경희 순대실록 대표는 “기준으로 삼은 게 비빔밥이었다”고 했다. “비빔밥처럼 한국인이 좋아할 식재료를 골고루 넣었어요. 밥과 고기, 야채를 순대 하나로 다 해결하자는 게 목표였어요”
순대 스테이크 한 개는 350g으로 2인 분량이다. 2012년에는 배화여대 식품영양학과 홍경희 교수에게 의뢰해 열량과 성분 분석을 받았다. 열량은 1인 기준 412kcal, 5대 영양소가 골고루 갖춘 음식이란 평가를 받았다.
순대 스테이크에는 당면과 선지가 없다. 대신 돼지 소창에 무항생 돼지고기, 표고버섯, 파프리카, 양배추, 양파, 브로콜리, 숙주나물, 부추, 대파, 당근, 찐 찹쌀, 흑미, 서리태, 땅콩, 해바라기씨, 모짜렐라치즈, 두부, 계란, 볶은 참깨, 건면 같은 23여가지 이상의 재료가 들어간다. 곡류 견과류 30%, 야채류 30%, 고기류 30%의 비율이다. 껍질인 소창의 비중은 10%이고, 후추, 마늘, 생강즙 등이 양념으로 살짝 들어간다.
◇기름기 없는 순대가 찰지고 맛있다
좋은 순대의 시작은 돼지 소창에서 출발한다. 건강한 돼지의 소창은 얇고 탄력이 있고 선홍빛이다. 질이 낮은 소창은 노란색에 손질해도 쓴맛이 돌거나 냄새가 난다. 순대실록의 순대는 껍질이 탄력이 있으면서 질기지 않다. 돼지 소창을 소주에 2시간 정도 담가 불순물과 냄새를 제거하고 육질을 부드럽게 한다.
돼지 소창은 긴 것이 13m 나 된다. 순대실록은 50cm로 잘라 쓴다. 다른 집보다는 짧게 만든다. 양 끝을 채우지 않고 삶으면 소창이 수축되면서 자연스럽게 막힌다. 이렇게 삶아내면 자연스러운 똬리 형태가 나온다.
소에 넣는 돼지고기는 머리고기와 다릿살, 잡육을 쓴다. 주로 기름기 없는 부위를 쓰고, 남은 기름기도 제거한다. 많은 기름기에 야채 수분까지 섞이면 순대가 질척거리기 때문이다. 흑미, 찹쌀, 견과류는 찌거나 불려서 속 재료로로 쓴다. 포만감과 고소함, 살짝 씹히는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마늘, 간 새우젓, 후추는 소창에서 나오는 냄새를 잡아준다.
50cm소창에 속을 채운 뒤에는 15~20분 삶아 5도 이하에서 4~5시간 건조 숙성 시킨다. 요즘에는 공장 설비를 이용해 40분이면 순대 스테이크를 만든다. 160~170도 정도에서 겉이 노릇노릇 구우면 순대 스테이크 요리가 완성된다.
◇ ‘피 없는 순대’ 탄생 배경은 ‘설문 조사’
육경희 대표는 대학로에서 ‘남도이야기’란 한정식 집을 운영하다 2009년 순댓집을 인수했다. 아저씨들이 주요 고객인 전형적인 순댓집이었다.
대학로에서 장사를 하니 젊은층을 끌어들여야 성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순대를 싫어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선지’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동물의 피가 들어간 음식에 대한 혐오감, 피에서 나는 철분 맛, 소창 냄새 등이 순대를 꺼리는 원인으로 꼽혔다.
연구자들은 ‘순대’의 어원을 만주어 ‘셍지(senggi, 피)’+‘두하(duha, 창자)’의 합성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순대는 피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육경희 사장은 ‘순대의 기본’을 파괴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파괴’를 결심한 육 대표는 6개월 뒤 순대실록만의 독특한 순대 2종을 선보인다. 모토는 ‘건강한 순대’였다. ‘백순대’를 먼저 내놨다. 붉은 선지를 빼고, 치즈와 계란을 넣은 ‘순대 스테이크의 원형’이 되는 음식이었다. 이어 ‘전통 슌대’를 내놨다. ‘슌대’는 19세기 말에 나온 한글 조리서 ‘시의전서’에 처음 등장한 말이다. 육 대표는 ‘시의전서’ 조리법을 바탕에 두고, 양배추, 부추, 당근, 양파 등을 추가로 넣었다.
두 가지 순대와 순댓국은 2010년 메뉴로 등장하자 바로 인기를 얻었다. 피가 부드럽고 곡물과 야채 등 소가 다양하다는 점에 소비자가 반응했다. 막 유행하기 시작한 ‘먹방’을 타면서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인수할 당시 150평 매장에서 하루 30만원이던 매출이 출시 후 3개월 만에 10배인 300만원, 6개월 뒤에는 1,000만원을 넘겼다. 당시 순댓국의 가격은 6500원~7000원이었다.
◇‘청춘순대’는 외면, ‘순대 스테이크’는 인기 폭발
매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니 남들이 하지 않는 순대를 개발하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문헌을 뒤지고 1년에 300곳 이상의 순대식당에 다녔다. 해외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미쳤냐’는 소리를 들어가며 2012년, 스테이크형 순대인 ‘청춘순대’를 내놨다.
반응은 싸늘했다. 한 개도 못 파는 날이 이어졌다. 가장 큰 요인은 14,000원이라는 가격과 낯선 스타일이었다. 순대를 저렴한 길거리 음식이나 간식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가격 저항력’은 컸다. 그럼에도 소에 들어간 각종 재료와 조리 과정을 생각하면 가격을 더 내릴 수 없었다.
순댓국 손님에게 ‘청춘순대’를 조금씩 서비스로 냈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반전의 계기는 결국 또 ‘먹방’이었다. ‘먹방’ 프로그램에 출연한 방송인 사유리 씨가 청춘순대를 썰면서 말했다. “썰어 먹으면 순대 스테이크 아닙니까?”
손님들이 청춘 순대가 아닌 ‘순대 스테이크’를 찾기 시작했다. 순대 스테이크 매출은 전체 매출의 10% 정도지만, 멀리서 마음 먹고 오는 손님들은 모두 ‘순대 스테이크’에 이끌려 오는 손님들이다. 지난 5월에는 한우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소고기 순대 스테이크도 같이 팔고 있다. 현재는 순대 스테이크와 스테이크 순댓국이 레스토랑간편식(RMR)으로 만들어져 이마트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한국형 순대의 세계화, 가능할까
육 대표의 힘은 ‘공부’에서 나온다. 2015년 순대연구소를 개설하고, 국내외 ‘순대’ 순례를 기록한 책 ‘순대실록’까지 냈다. 그는 순대의 매력을 “마법의 자루 같다”고 했다. “뭘 채우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고, 뭘 채워도 껍질이 단아하게 정리해준다.”
‘순대 스테이크’는 피를 싫어하는 젊은이들 취향에 맞춰 외국인들도 거부감이 없이 잘 먹는다. 현재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와 수출, 현지 생산 공장을 논의 중이다. 일본에서 한국 음식전문가로 활동 중인 핫타 야스시(八田靖史)는 순대 스테이크를 두고 “가장 스페셜한 한국 음식”이라고 평했다.
내장 음식은 ‘육식의 끝’이라는 말이 있다.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에는 ‘창자에 고기 반죽을 넣어 먹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기원전 7세기 이전에 쓰인 ‘시경’(詩經)에는 ‘갹’(臄)이란 순대가 나온다. 비숫한 시기, 동서양에 창자를 이용한 요리가 있었던 것이다. 창자 요리는 인류에게 익숙한 음식 문화 체계다. 순대 스테이크에서 ' K 순대’를 대표할 잠재력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