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대표하는 별미 낙지, 그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건 ‘뻘낙지’입니다. 다리가 가늘고 얇아 ‘세발낙지’라고도 부르지요.
낙지는 배를 타고 수심 깊은 바다로 나가 통발이나 낚시로 잡거나, 갯벌에서 손으로 잡습니다. 뻘낙지는 전통 방식대로 손으로 갯벌에서 잡습니다. 통발이나 낚시로 잡는 낙지를 ‘돌낙지’라고도 하는데요, 깊은 바다 돌 틈에 서식해 다리가 상대적으로 짧고 육질이 단단합니다. 뻘낙지는 갯벌을 파고들어야 해 다리가 가늘고 길면서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다지요.
◇낙지가 ‘스태미나 황제’인 이유
세상의 많은 별미가 그렇지만, 낙지는 맛도 맛이지만 스태미나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유명해졌습니다. 특히 ‘가을 낙지를 먹으면 쇠 젓가락이 휜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조선 후기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 보면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정약전이 시골길을 걸어가는데 밭에서 일하던 소가 쓰러져 있었답니다. 농부가 어디선가 낙지 서너 마리를 구해다 소에게 먹였더니, 소가 벌떡 일어나 다시 밭을 갈기 시작했다죠.
낙지가 이렇게 자양강장에 도움이 되는 건 타우린 성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낙지 100g 당 함량이 573mg으로, 인삼 한 근과 견줄 만 한 양이랍니다. 낙지를 ‘갯벌 속 산삼’이라 부를 만 하죠. 타우린은 강장효과뿐 아니라 동맥경화, 협심증, 심근경색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신경을 안정시키는 아세틸콜린과 각종 무기질, 양질의 단백질도 대단히 많습니다.
싱싱한 뻘낙지를 먹을 기회가 생겼다면 날로 먹는 게 가장 맛있다고 미식가들은 꼽습니다. 살아 꿈틀대는 놈을 손으로 서너 번 훑어 내린 다음, 젓가락에 둘둘 말아서 입에 밀어 넣고 우적우적 씹습니다. 껌처럼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입에 착 감기는 특유의 감칠맛도 기가 막히죠.
살아있는 낙지를 먹을 만큼 비위가 강하지 않다면 낙지탕탕이와 기절낙지가 있습니다. 탕탕이는 낙지 다리를 부엌칼로 사정없이 탕탕탕 내리쳐 전라도 사투리로 ‘쪼사버린’, 그러니까 다지듯 잘게 썬 음식입니다.
기절낙지는 이보단 더 섬세한 요리입니다. 먼저 낙지의 미끌미끌한 점액질을 물로 깨끗이 씻어냅니다. 산낙지 씻을 때는 바닷물을 쓰지만, 기절낙지는 민물을 써야 합니다. 머리로 흔히 아는 몸통에서 다리를 떼어내 접시에 담습니다. 몸통은 살짝 데치거나 데친 뒤 구워서 다리와 함께 냅니다.
다리가 여전히 꿈틀대지만 산낙지처럼 맹렬하지는 않아서 훨씬 먹기 편하지요. 딱 기절한 듯 보이죠. 배와 양파를 곱게 갈아 광천수, 고춧가루 등과 섞은 양념에 찍어 먹습니다. 새콤달콤매콤한 양념이 낙지와 잘 어울립니다.
연포탕도 가을 낙지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조리법입니다. 홍합 같은 조개로 시원하게 국물을 뽑아 배추를 넣어 시원함을 더하고 고추를 송송 썰어 넣어서 얼큰한 맛을 살립니다. 간은 소금으로만 합니다. 그래야 낙지 본연의 맛을 최대한 느낄 수 있죠. 국물이 팔팔 끓으면 산낙지를 집어넣습니다. 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넣거나 오래 끓이면 너무 익어서 질겨집니다. 샤부샤부 하듯, 먹을 만큼 넣고 살짝 익혀 먹는 게 포인트죠.
낙지는 부드럽고 감칠맛 나고, 국물은 시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해장 음식은 찾기 힘들 듯싶네요.
◇뻘낙지 잡이, 무형문화재 된다
낙지는 남획으로 소에게 먹이기는커녕 사람 먹기도 힘들만큼 귀하고 비싸졌습니다. 다행히 몇 해 전부터 서해안 일대에는 낙지 금어기가 설정됐습니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산란기인 6월 21일부터 7월 20일까지 한 달간은 낙지를 잡지 못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낙지 멸종을 막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뻘낙지를 잡는 방식 내지는 기술을 ‘손낙지’라 하는데, 이 손낙지가 무형문화재가 됩니다. 문화재청이 지난달 20일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낙지·문어 등 연체류와 바지락·백합·꼬막·굴 등 어패류를 맨손과 도구를 활용해 잡는 ‘갯벌어로’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지정 대상에는 갯벌어로 기술과 전통 지식, 관련 공동체 조직문화(어촌계)와 의례·의식이 모두 포함됩니다. 물속에 나무 기둥을 세워 고기를 잡는 ‘어살(漁箭)’에 이어 어로방식으로는 두 번째입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뻘낙지 등 전통 먹거리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반가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