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바이 초콜릿'의 한 장면./실버스푼

남자에게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빌(에런 엑하트)은 근사한 은행 부사장이지만 사실 장인 회사에 억지로 만든 자리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장인과 처남의 서류나 복사하고,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냥에 따라가 개처럼 총에 맞은 오리를 주워 와야 하는 등 뒤치다꺼리나 하고 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잘생긴 지역 방송기자와 바람이 나 졸지에 별거에 들어간다.

말하자면 총체적 중년의 위기에 처한 남자에게는 장기(長期)와 단기(短期), 두 가지 탈출구가 있다. 장기 탈출구는 제2의 커리어라 할 수 있는 도넛 체인점이다. 짜증 나는 장인과 처남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뿐더러 좋아하는 도넛도 실컷 먹을 수 있으리라는 일석이조 꿈에 부풀어 처가 식구들 몰래 사람들을 만나 가능성을 타진하고 다닌다.

영화 '굿바이 초콜릿'의 한 장면./실버스푼

단기 탈출구는 초콜릿이다. 회사 책상 서랍이며 집 찬장 등에 초콜릿을 잔뜩 숨겨 놓고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앞뒤 가리지 않고 까 먹는다. 덕분에 받는 스트레스만큼이나 혈당도 올라가고 배도 나온다.

이런 로맨틱 코미디물의 결말은 ‘안 봐도 비디오’다. 빌은 수영을 하며 조금씩 인생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한다. 은행을 벗어나는 한편 딱히 도넛 가게가 꿈도 아니었음을 깨닫고는 둘 다 집어치운다. 아내와도 엄청난 돌파구 없이 다시 사이가 좋아져 별거도 막을 내린다. 모든 근심이 사라지니 틈만 나면 입에 욱여넣기 바쁘던 초콜릿도 자연스레 끊는다. 그리하여 영화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영화평 집계 웹사이트 ‘로튼 토마토’ 평점 20%(100% 만점)에 빛나는 졸작답다.

‘굿바이 초콜릿’은 참혹한 졸작이지만 본의 아니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초콜릿은 몸에 나쁜가? 우리가 초콜릿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굳이 영화의 빌처럼 초콜릿과 ‘굿바이’해야만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초콜릿은 몸에 나쁘지 않다. 오히려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가 풍부해 활성산소를 제거함으로써 산화 스트레스를 막아준다.

그런데 왜 초콜릿은 건강의 적으로 취급받을까? 설탕 탓이다. 초콜릿은 주재료인 카카오콩을 가공해 나온 코코아 고형분과 코코아 버터의 혼합물이다. 원래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걸맞은 씁쓸하고 걸쭉한 음료였다. ‘초콜릿’이라는 이름 또한 지역 원주민 나와틀족의 ‘쓴 물’이라는 뜻의 말 ‘쇼콜라틀(xocolatl)’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초콜릿의 쓴맛을 상쇄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설탕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탄산음료처럼 몸에 나쁜 음식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말하자면 우리는 초콜릿보다 설탕을 먹어온 셈이다.

따라서 설탕을 적게 쓴 초콜릿을 찾으면 어느 정도는 안심하고 즐길 수 있다. 다크 초콜릿 말이다. 한때 초콜릿의 대표 주자였던 밀크 초콜릿에 비해 색이 진해서 붙은 이름이다.

다크 초콜릿 포장에는 흔히 백분율(%)이 쓰여 있는데, 이는 초콜릿 비율을 의미한다. 60%라면 코코아 고형분과 버터가 60%, 설탕이 40% 비율이란 뜻이다. 초콜릿 비율이 높아질수록 쓴맛도 강해지고 부드러움도 떨어지므로 60~70%대 제품을 권한다.

초콜릿에 들어간 지방도 확인하면 도움이 된다. 질 좋은 지방을 쓸수록 제품 전체 수준이 높고 맛도 좋아진다. 값비싼 코코아 버터 대신 아프리카 시어트리 열매에서 추출한 시어버터(shea butter) 등 좀 더 저렴한 지방을 쓴 제품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무엇보다 팜유를 쓴 제품만 피하면 된다. 팜유가 들어간 초콜릿은 촛농처럼 딱딱할뿐더러 입에 넣어도 부드럽게 녹아내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편의점 매대에서 자질구레한 초콜릿 스낵들을 놓고 뭘 선택할지 고민한다면 언제나 미국산보다 우월한 유럽산을 고르자. 오스트리아제 ‘마너 웨하스’, 스위스제 ‘캐기 초콜릿 웨이퍼’ 같은 제품이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1000원대의 지극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