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는 승리한다.’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됐던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지난 20일 자진 사퇴하자 한 네티즌이 올린 글이다. 황씨는 18일 페이스북에 “떡볶이는 영양이 불균형하고 자극적인 맛을 내는 정크푸드”라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학교 앞 금지 식품’으로 지정돼야 한다”는 글을 올려 떡볶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황씨와 떡볶이의 전쟁은 처음이 아니었다. 2018년 tvN ‘수요미식회’에 출연해서도 “떡볶이는 맛없는 음식”이라고 해 논란이 됐다.
황씨의 “떡볶이는 정크푸드” 발언은 전국 떡볶이 마니아들의 분노를 샀다. 다수의 네티즌들이 “떡볶이는 무죄”라며 떡볶이를 변호하고 나섰다. ‘마녀떡볶이’ 이승민 대표는 “당일 새벽 지방에서 배송해온 떡과 어묵을 쓰고 오픈주방 매장으로 청결하게 운영하는데, 떡볶이가 왜 불량 식품인가”라고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속 깊은 떡볶이’ 계정을 운영하는 오종탁(35)씨도 “한국인에게 떡볶이는 추억과 문화로 자리 잡은 음식”이라면서 “떡볶이를 만드는 활기찬 리듬이나 사장님의 캐릭터, 지역마다 다른 맛을 느끼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떡볶이는 어떻게 ‘한국인의 솔(soul) 푸드’가 됐을까.
◇넣는 재료 따라 맛이 천차만별
충성도 높은 떡볶이 애호가들은 동아리를 꾸려 전국 떡볶이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일주일에 3~4번씩 떡볶이를 먹으며 인스타그램에 떡볶이 전문 계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2년 전부터 ‘떡볶이귀신 보끼끼’ 계정을 만든 회사원 최서연(25)씨는 “떡볶이를 매일 먹으면 질리지 않느냐고 하는데, 국물 떡볶이, 포장마차 떡볶이, 즉석 떡볶이가 모두 다르고, 넣는 재료에 따라서도 맛이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최씨는 “최근엔 어묵이나 계란을 빼고 토마토소스와 브로콜리를 넣어 만든 비건(vegan) 떡볶이를 먹어봤다”면서 “해외에서도 채식 수요가 높으니까 수출하기도 좋지 않겠나”라고 했다.
실제로 떡볶이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떡볶이 수출액은 5400만달러로 2019년 대비 56.7%나 증가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로만 놓고 보면 라면(29.2%)과 김치(37.6%)를 제쳤다. BTS 지민이 서울 동대문시장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95.2%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건강한 재료를 엄선해서 만드는 프리미엄 떡볶이도 나오고 있다.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로우켓분식’을 만든 이진선 대표는 “직접 만든 고추장과 40년 넘은 방앗간에서 공수해 온 고춧가루, 매일 아침 새로 끓인 육수로 떡볶이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모두에게 익숙한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보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부산 출신인데 어릴 때 길거리에서 좌판 음식을 많이 먹고 자랐거든요. 저렴한 음식이라고 해서 가치 없는 음식은 아니잖아요.”
◇정크 푸드 아닌 솔 푸드
“떡볶이에서는요, 골목 냄새가 나요. 골목 냄새가 뭐냐면, 담이 낮은 집들이 쭉 늘어섰고 고무줄놀이도 겨우 할 만큼 좁은 골목들이 막 엉켜 있는데요, 초입에 붉은 포장을 친 떡볶이집이 있거든요… 이쑤시개로 밀떡 하나 집어 입에 넣으면 참 달콤도 하지. 종이컵에 부어주는 어묵 국물 후후 불어 마시면 등 뒤로 저녁 바람이 스쳐요.”
10명의 작가가 떡볶이를 소재로 펴낸 소설집 ‘당신의 떡볶이로부터’ 속의 한 대목이다. 몇 년 새 서점가에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아무튼, 떡볶이’ 같은 에세이들이 인기를 끌었다. ‘당신의 떡볶이로부터’를 기획한 조영주 작가는 “떡볶이를 안 먹어본 사람은 없다 보니 저마다 추억이 있더라”라고 했다. “요즘엔 직접 가래떡을 뽑고 양념을 만드는 웰빙 떡볶이집도 많은데 단순히 불량 식품이라고 말할 순 없죠. 프랜차이즈 떡볶이가 보편화하면서 위생 면에서도 상향 평준화가 됐고요.”
책 ‘떡볶이야 사랑해’를 쓴 이용근 작가는 전국 3000여 곳의 떡볶이집을 다니며 숨은 맛집을 소개한다. “오래된 집들 다니다 보면 옛날 생각이 나서 몇십 년 만에 왔다는 손님들도 있고, 30~40년 동안 꾸준히 다니는 단골손님들도 있다”며 “어떤 음식이든 정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데 특정 음식을 ‘맛없는 음식’’정크푸드’로 일반화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