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 ‘팥선생’의 팥빙수(앞)와 새알심팥죽.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무더위와 함께 빙수(氷水) 찾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이제 빙수는 여름 한 철 먹는 별미를 넘어 사계절 즐기는 기호식품입니다. 빙수가 대한민국 디저트의 제왕으로 등극한 건 2010년대입니다.

이전까지 빙수 하면 팥과 떡과 우유 등을 올린, 뻔하고 진부한 전통 빙과 취급 받았죠. 그러다 2010년 신라호텔은 ‘애플망고 빙수’를 선보였습니다. 제주산 애플망고를 듬뿍 올린 ‘애망빙(애플망고 빙수의 줄임말)’이 2008년 제주 신라호텔에 처음 등장해 투숙객들에게 호응을 얻자 서울 본점으로 상경했죠. 같은 해 부산의 떡 카페 ‘시루’는 빙수를 새롭게 재해석한 ‘인절미 설빙’을 선보였습니다. 기존 빙수보다 훨씬 곱게 간 얼음에 콩가루와 인절미를 얹었죠.

애망빙과 인절미 설빙은 폭발적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곡물·과자·초콜릿·치즈 등 새로운 식재료를 더한 창조적인 빙수가 속속 나왔습니다. 시루에서는 2013년 아예 빙수 전문점 ‘설빙’을 부산 남포동에 열었습니다. 이후 빙수 전문점이 앞다퉈 문 열었습니다. 한여름 잠깐 먹던 빙수는 여름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디저트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합니다.

◇ 특권층의 호사에서 대중의 별미로

빙수는 역사가 오래됐습니다. 고대 로마 황제들은 여름이면 4마리 말이 끄는 마차에 실어 로마로 급송한 알프스 만년설을 갈아서 레몬즙과 꿀을 뿌려 먹었습니다. 중국 송나라에서는 복날 황제가 겨울에 잘라서 빙장고(氷藏庫)에 보관해둔 얼음에 꿀과 팥을 섞어 대신들에게 하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복날, 승정원에서 정2품 이상 관리들의 집으로 얼음출고전표를 보내면 동빙고(東氷庫)에 가서 얼음을 찾아다 꽁꽁 언 얼음쟁반 위에 과일을 올려 먹거나 얼음을 잘게 부숴 화채 등을 만들어 먹었답니다.

만년설을 공수하거나 빙장고에 얼음을 보관하려면 보통 노력과 비용이 들지 않았겠죠. 빙수가 황제나 왕, 귀족, 갑부만 등 극소수 특권층만 즐길 수 있는 호사였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일반 대중도 빙수를 맛보게 된 건 19세기 말부터입니다. 1876년 독일 카를 린데가 암모니아를 냉각제로 사용하는 압축냉장장치를 발명했고, 인류는 인공적으로 얼음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세계 각국에서 빙수가 다채롭게 발달했습니다. 가키고리(かきごおり)라 부르는 일본 빙수는 1860년대 후반 요코하마의 빙수가게에서 탄생했고, 1880년대 후반 얼음을 곱게 갈아주는 기계인 빙삭기가 개발되면서 대중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제주신라호텔 '제주산 애플망고 빙수'. /조선일보DB

◇ 풍성한 한국 빙수 vs. 심플한 일본 빙수

오늘날과 같은 한국의 빙수는 1890년대 처음 선보였습니다. 일본인이 들여온 빙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여름 별미로 자리잡았습니다. 당시 빙수는 노랑·빨강·주황색 등 곱고 선명한 빛깔의 인공 색소와 딸기·오렌지·포도향 따위 인공 향료를 넣었습니다.

1920년대 소파 방정환 선생이 빙수를 유독 좋아했다는 기록, 함경도 원산항에 정박한 프랑스 군함의 수병이 원산 시내 빙수가게에서 행패를 부린 사건 등 당시 신문에 빙수 관련 기사가 여럿 나옵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뤄 1920~1930년대 빙수가 유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15년 서울에만 빙수장수가 442명이었답니다. 일본인 빙수장수는 현재 충무로 일대인 혼마치(本町)를 중심으로, 조선인 빙수장수는 종로에서 활동했습니다. 조선인이건 일본인이건 가게 앞에 빨간색으로 얼음 ‘氷(빙)’자를 쓴 깃발을 높게 달고, 입구에는 유리구슬로 된 주렴이나 발을 쳤다죠. 1930년대 ‘아이스케키’가 등장하며 빙수는 인기가 수그러듭니다. 하지만 작은 자본과 낮은 기술력으로도 진입·영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빙수는 계속 장사를 이어갔습니다.

한국 빙수는 단팥과 아이스크림·연유·떡 등 온갖 토핑을 더해 풍성한 맛을 즐기는 쪽으로 진화했습니다. 여전히 시럽·색소만을 뿌려 얼음 자체의 맛을 즐기는 일본의 가키고리와는 대조되죠. 두 나라의 미감(味感) 차이가 빙수에도 반영된 것이겠죠. 물론 한국 빙수가 난데없이 튀어나온 건 아니고, 일본 규슈 지방에서 얼음팥(氷あずき) 위에 연유를 붓고 과일을 올린 ‘시로쿠마’가 전해진 뒤 더 다양한 토핑을 올리는 쪽으로 발전했다고 보입니다.

여름철 경성 거리엔 얼음 빙(氷)자 깃발을 내건 빙수 노점이 줄이어 등장했다. 조선일보 1934년6월23일자에 실린 사진. /조선일보DB

◇ 1인용 빙수 코로나 이후 유행

빙수의 인기는 8·15 해방 이후로도 이어집니다. 1960~1970년대에는 제과점에서 빙수를 판매합니다. 1980년대에는 가정용 빙수기가 나오면서 집에서도 빙수를 해 먹을 수 있게 됩니다. 고전 팥빙수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빙수가게 ‘밀탑’이 서울 현대백화점에 오픈한 것도 1985년입니다. 이후 ‘빙수=팥빙수’라는 공식이 이어지다가, 2010년부터 다양한 빙수가 쏟아져 나옵니다.

업체들은 다양성과 함께 빙수의 고급화에 힘을 쏟습니다. 호텔 애망빙의 경우 6만원이 넘는 가격을 받는 만큼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줘야 했죠. 빙수 업체들은 빙질(氷質)에 신경쓰기 시작합니다. 눈꽃 얼음, 페이스트리 얼음, 대패 얼음, 면발 얼음 등 얼음 형태와 빙질을 세분화했습니다. 우유, 커피, 과즙, 샴페인 등을 얼음에 추가하기도 했죠. 얼음이 입안에서 느껴지는 촉감과 녹을 때의 식감까지 신경 쓴 거죠. 우유를 섞어 얼려 폭신하면서 부드럽게 녹는 눈꽃 얼음이 대세입니다.

토핑에도 당연히 신경 쓰고 있죠. 기존 팥빙수에 올라가는 단팥·찹쌀떡·콩고물을 국산을 사용해 매장에서 직접 만들거나, 과일·솜사탕·두텁떡·더치커피·초콜릿 등 고급 식재료를 새롭게 얹기도 합니다.

코로나 이후로는 1인용 빙수가 트렌드입니다. 1인가구 급증과 함께 등장한 1인용 빙수는 코로나 이후 폭발적으로 수요가 성장했습니다. 집에서 혼자 배달시켜 먹거나, 매장에서 먹더라도 위생을 고려해 한 그릇에서 빙수를 같이 떠먹기를 꺼려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이후로는 빙수가 어떻게 바뀌어갈 지, 빙수가 앞으로도 디저트계의 제왕 자리를 지킬 지 궁금합니다. 빨리 가서 빙수 한 그릇 먹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