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필동 '버피스'의 내슈빌 치킨버거(앞)와 핫윙.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미국에서도 치킨 버거를 먹는다. 하지만 이 땅에서 치킨 버거가 퍼진 맥락은 미국과 달라 보인다. 미국의 치킨 버거가 햄버거의 파생형이라면 한국의 치킨 버거는 프라이드 치킨의 확장형이라고 봐도 될 듯하다. 한국의 치킨 버거는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 본토의 레시피를 그대로 수입하는가 하면 거기서 한 단계 나아가기도 했다. 또는 이 땅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맛을 만들고 있다.

지금 가장 뜨거운 치킨 버거집을 꼽으라면 서울 성수동에 본점이 있는 ‘르프리크’가 맨 위에 올라온다. 늘 긴 줄을 피할 수 없는 이곳, 기다림 끝에 안으로 들어가니 어두운 조명 아래 적갈색 원목 바 테이블과 가죽을 덧댄 소파가 보였다. 그윽한 분위기 속에서 나온 치킨 버거는 가슴을 쫙 펴고 날갯짓을 하는 수탉 같은 위용이었다. 한입에 넣기 버거운 크기였다. 반으로 잘라보니 튀긴 닭다리살 위에 적양배추와 당근을 절여 만든 콜슬로와 오이 피클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버거를 입에 밀어 넣었다. 닭 부위 중 지방이 가장 많아 그만큼 육질이 부드러운 허벅지 살이 한가득 씹혔다. 그 느끼한 맛은 일종의 샐러드인 콜슬로가 끌어안듯 상쇄시켰다. 짠맛이 지배적이었지만 부담스럽지 않았다. 매운맛은 1에서 3단계까지 고를 수 있었다. 2단계는 살짝 매콤한 정도였다. 그 매운맛은 씹을수록 단맛이 묻어나는 폭신한 빵에 스며들어 접시에 빵 부스러기도 남길 수 없었다.

성수동을 떠나 연희동에 가면 좁은 이면도로 한편에 ‘바네스 치킨&버거’라는 집이 있다. 주변 대학가에서 “연희동의 축복”이라고 말한다는 이곳은 홀 영업은 하지 않고 배달과 포장만 한다. 노란색이 빛이 바래 마치 희미한 추억 같기도 한 이 집은 상호 그대로 치킨과 버거를 함께 판다. 배달하는 치킨집은 하늘에 뜬 별처럼 많지만 치킨 버거도 함께 하는 곳은 드물다. 프랜차이즈가 아니면 더더욱 그렇다.

프라이드 치킨부터 살펴보면 별 기교 없이 막 튀긴 것이 아니라 튀김옷에 물결 무늬가 잔잔히 들어간 신식 기법을 썼다. 튀긴 정도를 보면 바삭함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과자 수준으로 수분을 바싹 제거한 튀김옷은 씹을 때마다 강한 파열음을 냈다. 양념은 부산 쪽 떡볶이 양념처럼 빨간색이 짙었다. 하지만 매운맛보다는 단맛이 강했다. 치킨을 먹다 끝에는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빨면서 먹게 됐다.

치킨 버거는 포장을 뜯기 전에도 두툼한 무게감이 손에 전해졌다. 반으로 잘라보니 역시 바삭하게 튀긴 허벅지 살 밑에 연두색 양상추가 한국은행 금고 속 돈뭉치처럼 빡빡하게 들어차 있었다. 모두를 감싼 빵은 짧은 전주곡에 불과했다. 빵을 돌파하자마자 “파삭 바삭 아사삭” 소리가 연달아 났다. 상큼한 마요네즈 소스가 넉넉히 들어가 맛에 빈틈을 주지 않는 이음매 역할을 했다.

충무로 대한극장 뒤편에 가면 ‘버피스’라는 집이 있다. 메뉴는 치즈 버거와 치킨 버거, 핫윙으로 단순했다. 모 아니면 도, 햄버거 아니면 치킨 버거. 상황이 이렇다면 다 시켜 먹는 게 답이었다. 소고기 패티를 큰 철판에 눌러가며 바싹 구운 치즈 버거는 애써 기름진 맛을 숨기지 않았다. ‘치즈 버거는 원래 이런 맛이다’라고 소리 높여 주장하는 듯 노란 치즈는 패티 위에 진하게 녹아났고 피클은 존재감 있는 신맛을 발했다.

치킨 버거는 역시 허벅지 살을 튀겼는데 그 색이 진했다. 버거는 눈으로 보기보다 입으로 느끼는 게 빠른 법. 입에 밀어 넣으니 두툼한 양감이 밀려왔다. 야만인이 된 것처럼 더 크게 입을 벌렸다. 치킨은 기본적으로 맵게 양념되어 있었지만 튀김옷 겉에 단맛이 교묘히 숨어 있었다. 두툼한 닭고기는 이에 엉기거나 퍽퍽한 기운이 없었다. 적양배추 콜슬로와 피클은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 있었지만 지루하거나 상투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미국 뉴올리언스 어느 뒷골목 술집 빅밴드의 음악이 들려올 것만 같았다. 드럼의 심벌즈가 울리고 묵직한 콘트라베이스가 현을 당긴다. 그 위로 색소폰과 피아노가 춤추듯 박자와 리듬 사이를 넘나든다. 그리고 아삭 소리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치킨 버거 한 조각이 있다.

#르프리크: 시그니처 버거 9800원.

#바네스 치킨&버거: 프라이드 치킨 1만5000원, 양념치킨 1만6000원, 치킨 버거 4000원.

#버피스: 더블치즈버거 7000원, 치킨 버거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