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은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바다·산·평야를 가진 곳으로 모든 식재료가 풍부하고, 개성상인이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뒷받침해주었죠. 서울 음식의 뿌리도 개성 음식에 있습니다. 통일된 한반도에서 마주하게 될 ‘통일 밥상’은 ‘서울 밥상’도 ‘평양 밥상’도 아닌 ‘개성 밥상’이 될 겁니다.”
30여 년간 한식을 연구하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해온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통일식당 개성밥상’(들녘)을 최근 냈다. 불교·귀족·국제무역을 토대로 꽃피운 고려의 화려한 식문화와 이를 계승·발전시킨 개성 음식을 소개한 책이다. 낙지·전복·굴·밤·배 등 값비싼 해물과 과일로 속을 채운 보김치, 된장에 고기를 갈아 넣고 둥글게 빚어 말렸다가 얇게 저며 기름에 지져 먹은 장떡, ‘원조 순대’ 개성 절창, 조롱박처럼 허리가 잘록한 조랭이 떡국 등을 줄줄이 소개한 대목을 읽다 보면 입에 침이 고인다.
정 교수는 “마리, 석란 등 고급 한정식집부터 용두동 개성집, 혜화동 목동집 같은 대중적 식당까지 개성 음식을 내는 곳들이 많이 없어졌다”며 “개성 음식을 만들 줄 아는 분들이 사라지는 게 크고, 심심하고 담백한 음식보다 자극적인 맛이 젊은이들에게 인기이기 때문인 듯하다”며 아쉬워했다. 그가 개성 식문화를 맛볼 수 있는 4곳을 소개했다.
개성만두 궁
“서울에서 가장 대중적인 개성 식당을 들라면 이 식당을 꼽겠어요. 크고 꽉 찬 속이라는 개성 만두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배추와 숙주나물이 넉넉히 들어가 담백하고 삼삼한 맛이 나요. 조랭이 떡국도 별미죠.”
고(故) 임명숙 창업자는 친정 어머니에게 만두 빚는 법을 배워 고향 개성에서부터 만둣집을 하다가 서울 영등포에서 20년 넘게 만두를 팔다가 1972년 인사동으로 이사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임씨의 큰며느리에 이어 손녀 신부원 대표가 3대째 운영하고 있다.
개성만둣국·조랭이떡국 각 8000원, 김치만두전골 1만7000원.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11-3, (02)733-9240
담온
한식 상당수가 개성에서 만들어졌다는 건 알았지만, 닭볶음탕도 개성이 원조임은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일제강점기 쓰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송도의 명물 요리 도리탕(볶음탕)’이라고 나와요. 당시에는 새우젓으로 간했지만, 고춧가루가 중심이 된 매운맛으로 변모한 듯해요.”
그래서일까. 서울 도곡동 ‘담온’은 이북식 손만둣집으로는 특이하게 닭볶음탕이 메뉴판에 올라와 있다. 물론 매콤한 요즘 식이다. 음식이 정갈하다. 큼직한 이북식 만두가 푸짐하게 담긴 유기 대접을 사각 소반에 차려 낸다. 채소 끓인 물로 반죽한 피에 두부·양배추·숙주·돼지고기 등으로 속을 꽉꽉 채운 만두가 양지·사태 등을 끓여 소금·간장만으로 간을 한 맑은 고기 국물과 잘 어우러진다.
만둣국 1만3000원, 물·비빔막국수 9000원, 닭볶음탕 3만5000·4만5000원. 서울 강남구 논현로28길 33, (02)577-8808
옥천냉면
“부모님 고향이기도 한 황해도 해주는 개성 음식의 범주 안에 있다고 봐도 무방한데요. 평양과 함께 냉면의 본거지로 꼽히는 지역입니다. 해주냉면은 메밀에 전분을 섞어 만들기 때문에 평양냉면보다 면발이 굵고 찰기가 있죠. 소고기 아닌 돼지고기 육수를 쓰는 게 특징이고요.”
경기도 양평 옥천면에 있는 ‘옥천냉면’은 개성과 해주에서 멀지 않은 황해도 금천군에서 냉면집을 하던 창업주가 월남해 1952년 개업한 ‘황해식당’이 그 출발이다. 지금도 본점에 가면 옥천냉면 아래 황해식당이란 간판이 함께 걸려 있다. 굵고 차진 면발, 달고 경쾌한 돼지고기 육수 등 해주냉면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동그랑땡’이라고 흔히 부르는 완자가 어쩌면 냉면보다 더 인기다.
냉면 1만원, 완자·편육 각 2만원. 경기 양평군 옥천면 경강로 1493-12, (031)773-3575
김씨부인
“과자(菓子)는 과일이 나지 않는 계절 의례상에 올리기 위해 과일을 모방해 만들기 시작한 간식입니다. 고려시대에는 국가가 나서서 과자 만드는 걸 금지할 정도로 귀하고 사치스러운 음식이었습니다. 개성은 고려의 수도였고 조선시대에도 부유한 도시였던 만큼 과자 문화도 발달했지요.”
개성의 대표적인 과자가 개성주악이다. ‘우메기’라고도 부른다. 찹쌀가루에 막걸리를 넣고 반죽해 기름에 지져낸 다음 조청을 입힌다. 동그랗게 빚은 뒤 가운데를 엄지로 누르고 대추를 잘라 박으면 영락없이 앙증맞은 과일처럼 보인다. 쫄깃한 식감에 달콤하고 고소한 데다 쉬 굳지 않아 명절 때 여러 날 두고 먹기 좋다.
서래마을 ‘김씨부인’은 개성주악을 비롯, 전통 한과와 떡을 전통 소반상에 담아 차와 함께 내준다.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이다. 모루농장소반 2만3000원, 백자합소반 2만9000원. 서울 서초구 사평대로26길 26-6 2층, (02)532-5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