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일 년에 하루 아버지가 케이크 사 들고 집에 오는 날’이라는 인상이 우리에게는 강합니다. 연중 케이크가 가장 많이 팔리는 대목이 크리스마스라죠. 제과제빵업계에서는 “일 년 케이크 총 판매량의 30%가 12월 23~25일 사흘 동안 팔려나간다”고 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케이크는 산업 혁명과 함께 탄생했다고 합니다. 나무나 석탄이 아닌 가스불을 쓰면서 불과 온도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됐고, 대량으로 케이크를 구울 수도 있어졌죠. 케이크를 결혼식이나 생일에 먹는 건 원래 독일 풍습으로, 미국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죠. 한국에도 들어와 생일은 물론 크리스마스에도 케이크를 먹게 됐지만, 정작 독일에서는 크리스마스 때 케이크를 먹지 않습니다. 슈톨렌(stollen)이라는 빵을 먹습니다.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서는 저마다 크리스마스 때 특별히 먹는 절식(節食)이 따로 있습니다.
독일 가정에서는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두고 슈톨렌을 한 덩어리 삽니다. 일주일에 한 조각씩 슈톨렌을 잘라 먹으면서 크리스마스를 기다립니다. 가운데에서 한 쪽씩 잘라 먹고 양쪽을 맞붙여 비닐랩으로 싸둡니다. 슈톨렌은 숙성될수록 맛이 깊어지는데, 이 맛의 변화를 음미하는 것이죠. 슈톨렌은 오븐에서 구운 뒤 꼬챙이로 찔러 무수히 많은 구멍을 뚫습니다. 그런 다음 녹인 정제버터에 담가 흠뻑 빨아들이게 하고, 설탕에 굴립니다. 버터와 설탕이 속까지 깊숙이 배어든 슈톨렌은 상온에 몇 달을 두어도 굳거나 상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에도 크리스마스에 먹는 특별한 빵이 있습니다. 파네토네(panettone)입니다. 달거나 느끼하지 않지만 슈톨렌 못잖게 버터와 설탕이 잔뜩 들어갑니다. 덕분에 슈톨렌처럼 오랫동안 굳거나 상하지 않죠. 파네토네는 이탈리아 패션과 경제의 중심인 도시 밀라노에서 600여 년 전 탄생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밀라노의 지배자였던 루도비코 공작은 연회를 앞두고 “중요한 손님들이 오시니 연회를 특별히 신경 써 준비하라”고 주방장에게 명합니다.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빴던 조리장은 디저트를 깜빡합니다. 절망한 조리장에게 주방의 막내 토니(Toni)가 “제가 새로 개발한 빵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안이 없었던 조리장은 가슴을 졸이며 토니가 만든 빵을 연회에 냅니다. 손님들이 맛있다면서 “이 처음 먹어본 빵이 뭐냐”고 물었죠. 조리장은 “판 데 토니(pan de Toni)” 즉 “토니의 빵”이라고 대답합니다. 시간이 흐르며 ‘판 데 토니’는 ‘파네토네’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파네토네가 ‘토니의 빵’에서 비롯됐다는 설은 흥미롭지만 신빙성은 떨어집니다. 그보다는 작은 로프케이크(loaf cake·막대 모양 케이크) ‘파네토(panetto)’에 ‘크다’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접미사 ‘-one’가 붙어 ‘파네토네’가 됐다는 설이 재미는 덜하지만 더 설득력 있지요. 전형적인 파네토네는 높이가 12~15cm로, 일반적인 빵보다 훨씬 크고 높습니다.
파네토네와 슈톨렌을 만들려면 버터와 설탕이 다량 필요한데다, 준비과정이 길고 복잡해 가격이 웬만한 케이크 이상으로 비쌉니다. 슈톨렌에 들어가는 견과류와 건과일은 럼에 한 달 동안 재워놨다가 사용합니다. 파네토네는 반죽을 발효시키려면 3~4일이나 걸리는데다 제대로 부풀리기도 쉽지 않은 등 제조공정이 까다롭고 길어서 인건비가 일반 빵보다 훨씬 많이 들어갑니다.
프랑스에선 크리스마스 때 ‘부쉬 드 노엘(buche de Noel)’이라는 케이크를 먹습니다. 큰 롤케이크에 작은 롤케이크를 이어 붙이고 갈색 크림을 바르고 표면을 긁어서 통나무 또는 장작처럼 보이게 만드는 케이크입니다. 고대 켈트족은 동짓날 악마와 액운을 물리치려고 장작을 태웠다고 합니다. ‘내년이 환하게 타오르길 기원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불을 붙이는 정월 민속놀이와 비슷하죠.
국내에서도 최근 슈톨렌이나 파네토네, 부쉬 드 노엘을 크리스마스 때 먹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유럽 여행을 다녀오거나 해외 생활한 이들이 많아졌고, 이제는 흔해진 케이크 대신 새롭고 색다른 성탄절 음식을 찾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맞춰 많은 제과점에서 연말이면 슈톨렌·파네토네·부쉬 드 노엘을 내놓고 있습니다.
슈톨렌과 부쉬 드 노엘은 커피나 홍차와도 물론 어울립니다만, 조금 다르게 맛보고 싶다면 코냑·럼 등 단맛이 나면서 도수가 높은 술과 드셔보세요. 아주 잘 어울립니다. 원래 유럽에서 즐겨 먹는 조합입니다. 파네토네는 프랑스 샴페인이나 이탈리아 프로세코, 스페인 카바 등 스파클링 와인과 찰떡궁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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