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요리사가 만든 샌드위치를 손에 들었다. ‘일은 안 하고 샌드위치나 만들었네.’ 속으로 욕하며 무뚝뚝한 얼굴로 샌드위치를 받았다. 호주 멜버른 한 식당 주방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릴에 구운 식빵은 구운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빵 안쪽에는 겨자를 발랐다. 두툼한 닭가슴살과 로메인 상추, 구운 양파 같은 것이 도서관 책처럼 차곡차곡 들어차 있었다. 재료마다 소금·후추 간도 정확했다. 있는 힘껏 입을 열고 샌드위치를 밀어 넣었다. “아사삭” 소리와 함께 과자처럼 바삭한 빵이 부서졌다. 구운 고기와 채소가 그 뒤로 이에 닿았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서두처럼, “바바바밤” 하는 빠른 템포로 각 재료의 식감과 맛이 순서대로 느껴졌다. 소스는 재료와 재료를 아우르는 화음이었다. 그리고 샌드위치는 간식이 아니었다. 두 손에 꽉 잡히는 샌드위치 하나로 온종일을 버텼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프랑스에 가까운 빵과 햄을 만드는 곳 중 하나는 서울 서래마을 ‘메종조’다. 아내가 빵을 굽고 남편이 햄을 만드는 이곳은 프랑스 시골 마을에 온 듯 짙은 색 나무로 꾸민 실내에 베이컨, 소시지와 같은 가공육과 바게트, 크루아상 등 프랑스 빵을 선보인다. 작은 홀에서는 간단한 음식과 와인을 내놓는다. 빵과 햄이 있으니 당연히 샌드위치도 판다. 그중 ‘시골빵’이라는 별칭이 붙은 캄파뉴 빵을 크게 썰고 돼지 뒷다리로 만든 잠봉햄과 콩테 치즈를 넣은 ‘샌드 캄파뉴’를 꼭 먹어봐야 한다.
이 샌드위치는 조잡하게 여러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산미가 살아있는 빵과 소금기가 제대로 묻어나는 햄, 노란 치즈가 선 굵은 삼중주를 펼친다. 그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느낌은 없다. 재료의 선명한 맛이 남긴 긴 여운에 프랑스 사람처럼 샴페인을 한잔 곁들이며 점심 나절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유행을 좇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서울 성수동에 가면 간판 없이 운영하는 ‘큐뮬러스’가 있다. 정비소 골목에 통창 하나 둔 이곳에 처음 가면 레코드 가게인지, 아니면 디자이너 스튜디오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자리에 앉아 잡지를 펼치듯 메뉴를 들었다. 메뉴는 보지 않고 읽어야만 했다. 샌드위치를 만든 의도와 레시피가 한 페이지에 빡빡이 정리되어 있었다. ‘ACCA’라고 쓰고 ‘아까’라고 읽는 샌드위치 이름 밑으로 와사비 마요네즈, 그린빈, 아스파라거스, 오크라, 로스트비프 같은 이국적 재료가 나열되어 있었다.
레고 조각을 맞추듯 각을 잡고 차곡차곡 재료를 쌓아 올린 샌드위치는 기하학적인 구조물에 가까웠다. 입에 넣을 때도 이 구조물을 최대한 해치지 않고 그대로 삼키고 싶었다. 정확하게 정리된 레시피처럼 맛도 이성적이었다. 채소가 내놓는 식감의 결도 오크라와 그린빈, 아스파라거스가 다 달랐다. 로스트비프는 푹신했고 와사비 마요네즈는 일본에서 자주 쓰는 오크라와 로스트비프의 궁합을 고려한 절충점이었다. 가게 겉모습은 감성적이었지만 내놓는 음식은 오래 생각하고 고민한 맛을 지녔다.
서울 대치동 휘문고등학교 근처에 가면 ‘베카 프리미엄 델리샵’이라는 곳이 있다. 외국에서 오래 일한 주인장이 홀로 주방을 지키는 이 집은 샐러드와 샌드위치가 주력이다. 긴 머리를 뒤로 묶고 바쁘게 움직이는 주인장이 내놓는 샌드위치는 이름이 길거나 난해하지 않았다. 주재료를 간단히 나열한 설명과 함께 ‘햄 샌드위치’ ‘클래식 샌드위치’같이 야망 없는 이름들이 붙어 있을 따름이었다. 샌드위치 면면을 살피면 스스로를 뽐내고 싶은 마음보다 남에게 뭔가를 더 주고 싶은 욕심이 더 크게 보였다.
‘영국식 허니 커리 샌드위치’는 닭가슴살을 잘게 다져 허니커리 소스에 버무리고 토마토, 로메인 상추, 치즈를 바삭하게 구운 빵 사이에 넣었다. ‘튜너 아보카도 샌드위치’는 흔한 참치 통조림에 잣과 같은 견과를 넣고 아보카도를 촘촘히 깔아 친숙하면서도 이국적인 정취를 이끌어냈다. ’72시간 파슬리 치킨 샌드위치'는 파슬리 소스에 사흘간 절이고 구운 닭가슴살을 얇게 깔고 파슬리 소스와 버섯, 토마토를 넣었다.
손에 잡히는 작은 음식이지만 그 안에 담긴 세계는 작지 않았다. 격식에 얽매여 고루하거나 남의 시선에 사로잡혀 치장을 과하게 하지 않았다. 대신 즐거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재료를 굽고 잘라 소담하게 담아냈다. 간단한 샌드위치였다. 하지만 정찬을 먹은 것처럼 오랜만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빈 접시를 보고 “맛있게 드셨어요?” 하고 반갑게 묻는 인사는 또 얼마 만이던가?
#베카 프리미엄 델리샵: 영국식 허니 커리 치킨 샌드위치 8800원, 튜너 아보카도 샌드위치 8900원, 72시간 파슬리 치킨 샌드위치 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