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야, 용산이야?’ 부산행 KTX 열차가 플랫폼을 서서히 떠나는 장면에서 궁금해졌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의외로 서울역이라고 한다. 설정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만 영화에 담긴 공간은 분명히 서울역이 아니다. 서울역의 플랫폼은 탁 트여 있어서 출입구를 나서면 플랫폼이며 철도, 열차가 한 눈에 들어온다. ‘부산행’(2016년)에 등장하는 역 공간은 막혀 있고 규모도 작다. 게다가 주인공 석우(공유)는 펀드 매니저이니 여의도에서 근무할 가능성이 높다. 이래저래 출발역은 영등포이어야 이치에 맞는다.
에휴, 먹을 게 지지리도 없겠군. 철도 여행의 음식 문화가 아직도 어린 시절 홍익회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고 믿는지라 나는 석우와 딸 수안을 걱정했다. 그래도 나름 기차 여행인데 맛있는 거라도 먹으면서 가면 좋지 않을까? 일단 서울역부터 별로이니 용산이든 영등포는 더 기대할 게 없다. 열차 내에서 파는 음식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은 역의 도시락, 즉 에키벤이 명물 취급을 받기도 하는 등 기차 여행의 재미를 한층 더 돋워주는 먹을 거리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예약해서 받는 고급 도시락도 개성이나 특색 없는 반찬 일색이다.
‘대체 우리는 언제쯤 맛있는 기차 여행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플랫폼으로 좀비가 우르르 쏟아져 내려온다. 부산행 열차가 이미 떠나기는 했지만 문이 닫히기 직전 감염자가 탔다. 저런. 객실 복도 바닥에 뒹구는 좀비를 병자라 착각한 승무원이 도와주려 다가갔다가 물린다. 좀비를 어깨에 짊어진 채로 승무원이 객실에 들어간다. 그렇게 부산행 열차는 곧 아수라장 좀비판으로 변한다.
아, 지금 내가 우리 인간을 걱정할 때가 아니네. 그렇게 앞다투어 좀비로 변해가는 승객들을 보며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생각만 해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한국 철도의 먹을 거리이지만 그것도 인간이 먹는다고 상정할 때에나 의미가 있다. 승객이 좀비가 됐으니 적어도 오래돼서 아래 부분이 푹 파여 들어간 구운 계란 같은 건 안 먹어도 되겠군. 좀비가 구운 계란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없다. 그래서 참으로 다행스럽지만 걱정을 멈출 수는 없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3시간 동안 좀비는 대체 무엇을 먹으며 즐겨야 하는가? 지금껏 이 칼럼에서는 인간이 먹는 주체인 상황만 살펴 보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똑같이 필름 위에서 벌이는 만찬이되 먹는 주체는 좀비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즐기는 핼러윈(만성절)이 얼마 전이었으니 나름 철도 맞는다.
첫 기록이 18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좀비도 나름의 연륜을 쌓은 존재이다. 하지만 부산행'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영화 및 게임 등에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으로 처음 등장한 때는 비교적 최근인 1968년이다. 미국 감독 조지 A 로메로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Living Dead)’에서 죽었으되 죽지 않은(undead), 인간을 물어 세를 불리는 시체가 처음 등장했다. 그런데 좀비는 무엇을 먹는가? 아무래도 우리 인간을 먹이로 삼을 거라 생각하기가 가장 쉽다. 인간을 물어 자신들로 탈바꿈시키기가 좀비의 핵심 정체성이자 가장 큰 공포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고 많은 관련 영화 및 게임을 즐기면 즐길 수록, 좀비가 인간을 먹을 거라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가 더 어려워진다. 일단 좀비가 정녕 인간을 먹이로 삼는다면 세(勢)를 착실하게 불려 나갈 수가 없다. ‘케이크를 가지고 있으면서 먹을 수는 없다(you can’t have a cake and eat it too)’라는 영어 속담이 있다. 좋은 선택은 한 가지만 누릴 수 있다는 의미. 따라서 인간이 좀비의 케이크라면 한 가지 경우만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을 먹거나 아니면 물어 전염시켜 세를 불리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두 가지는 단순히 물리적으로도 양립할 수가 없다. 좀비는 남은 인간을 찾아 뛰어 다녀야 제맛인데 다리라도 이미 먹었다고 치자. 물어서 세를 불리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설사 먹는다고 치더라도 인간이 좀비에게 맛있는 먹을 거리일지 장담할 수가 없다. ‘동물은 먹이의 맛이 난다’라는 말이 있다. 고등어를 먹여 키우면 방어에서 고등어 맛이 난다. 소에게 옥수수를 먹이면 마블링과 단맛이 두드러지며, 자연의 이치를 최대한 따라 풀을 먹이면 고기에서 정말 풀 맛이 난다. 고기 뿐만 아니라 버터 같은 유제품도 마찬가지이다. 소의 먹이에 따라 풀향이 더 두드러지는 제품도 있다. 이처럼 어떤 맛을 내든 모든 동물성 식재료는 사육하며 인간이 먹이를 통제해 최선의 식재료로 다듬는다.
그러는 장본인인 우리 인간은? 좀비를 뺀다면 최상위 포식자이자 만물의 영장이므로 먹힐 걱정이 없다. 따라서 자신이 식재료로 쓰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즐거움을 찾아 먹으니 맛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치찌개에 김치 반찬을 먹을 정도로 고춧가루를 즐기는 한국인이라면 매워서 좀비, 특히 서양 출신이 싫어할 것이다.
맛이 별로라면 영양가는 높을까? 사실 아무도 확답할 수 없고 확답해서도 안될 질문이지만 최근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2018년의 이그 노벨상 수상자인 제임스 콜 박사(영국 브라이턴대 고고학 강사)는 구석기 시대 인류가 사냥해서 잡아 먹었던 동물에 비해 인육의 열량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발광하며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즉 활동량이 많은 좀비에게 인간이 충분한 영양가를 제공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좀비가 좀비를 먹을까? 자기들끼리 물고 뜯는 장면이 어디에서도 잘 나오지 않기도 하지만, 싱싱하지도 않은지라 배가 고프다고 서로 잡아 먹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좀비는 대체 무엇을 먹는 걸까? 혹시 전염시킬 인간과 먹을 인간을 분류해서 어딘가에서 양식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좀비가 무수히 많은 영화에 무수히 많이 출연하지만, 이들을 위한 만찬을 차리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모저모 따져보면 인간은 그냥 물어 세를 불리는 재미에 쓰고, 좀비도 부산행 KTX에서는 그냥 구운 달걀을 먹는 게 무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