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 먹어. 여기 송아지 고기 아주 연하고 좋아. 게다가 이거, 한우야 한우.” 이중구(박성웅)가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수하 폭력배들에게 음식을 권한다. 밥 먹는데 일 이야기 하지 말자면서. 아휴, 꼴 보기 싫어.
‘신세계’(2012년)에서 ‘무뢰한’(2014년)로 이어지는 사나이픽처스 제작 영화 덕분에 박성웅은 나에게 미운 털이 박혔다. 영리하지 못하고 비열하기만 한데다가 여자도 괴롭히고 착취하는 배역 탓이다. 오죽하면 그가 모델로 발탁된 뒤부터 종종 사 입은 남성복 브랜드를 향한 애정이 좀 식었다. 보기 좋게 차려 입고 미소를 짓는 박성웅에게 자꾸만 이중구의 이미지가 겹쳐 떠오르는 탓이다.
물론 박성웅이라는 배우를 미워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만큼 그가 연기를 잘 했다는 방증이리라. 사실 박성웅은 처음부터 이중구 역에 발탁되지 않았다. 신세계 감독인 박훈정은 원래 ‘배역에 안 맞는 것 같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에 박성웅이 이중구 분량의 대본을 전부 외워 재도전해 배역을 따냈다.
박성웅, 아니 이중구를 진짜로 미워할 이유가 있다면 한우 송아지 스테이크여야 한다. ‘신세계’에서 해당 장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송아지 고기라고? 그것도 한우라고? 송아지 고기를 먹는 행태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한우로는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다. 한우는커녕 육우조차도 송아지 고기는 식용으로 나오지 않는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송아지 고기 판매처가 딱 2군데 나오는데 모두 호주산이다. 어차피 허구니까 상관 없거나, 실제로 한우 송아지 스테이크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치자. 스테이크의 초라한 풍모는 이중구가 발산하는 조폭풍(風) 허세와는 격이 전혀 맞지 않는다.
대체 한국 영화에서는 스테이크가 왜 저렇게 초라하게 등장하는 걸까?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막판에 등장하는 스테이크는 얇고 곁들인 채소는 빈약하다. 의상과 메이크업, 헤어드레싱 등을 통해 최고의 풍모를 갖추는 배우들과 비교하면 스테이크는 딱할 정도로 초라하다. 두께가 5㎝는 될 티본 스테이크-T자형 뼈를 가운데 두고 안심과 채끝이 함께 붙어 있다-를 최소 30일은 숙성시킨 것으로 구워야 조폭의 식사로 어울린다. 애초에 뉴욕의 스테이크 하우스도 조폭은 아니더라도 남성 사교 클럽 같은 역할로 처음 등장했다. 정장 차림에 시가를 피우고 위스키를 홀짝이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두꺼운 스테이크를 동물처럼 먹곤 했다.
한우 송아지 고기의 실태를 파악하고자 예전 뉴스를 검색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신세계’가 개봉된 2012년, 송아지 고기를 식용으로 공급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오른 사료값과 떨어진 소 값이 맞물려 일어난 파동을 해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흠, 설마 영화 속 그 장면이 송아지 고기 PPL(간접 광고)은 아니었겠지? 제안을 실행에 옮겼다는, 즉 송아지 고기를 식용으로 유통했다는 후속 뉴스가 없는 걸로 보아 PPL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송아지 고기를 식용으로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농가가 정서적으로 반발할 것이다(경력 40년의 축산 농가주가 “송아지를 고기로 먹는다고요? 말도 안되죠”라고 의견을 밝히는 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또한 그저 송아지를 잡는다고 해서 식용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고기를 먹기 위한 송아지는 따로 키운다. 서양에서는 송아지 고기를 일상적으로 먹는다. 대표적인 예가 이탈리아이다. 송아지 홍두깨살이나 사태 등을 삶아 참치 소스를 끼얹은 ‘비텔로 토나토’ 같은 전통 요리가 있다. 이처럼 식용으로 쓰는 송아지 고기는 사료 대신 어미소의 젖을 먹여 8~16주까지만 키운 뒤 도살한다. 그래서 수유가 부드러운 육질과 섬세한 맛의 비결이자 전통적인 사육 방식이라 알려져 있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수유를 시키면 어미소의 생산성 및 효율이 떨어지므로 요즘은 인공유를 먹여 식용 송아지를 키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식품 안전의 기준을 결정하는 기관에서도 인공유 사육 송아지를 ‘젖을 먹여’ 키운 것으로 분류한다. 분유 먹인 송아지라니 기가 막힌다 여길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 정도의 조건은 갖춰야 송아지 고기의 식용화를 고려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아니, 그래도 어린 동물인데 어미의 젖을 먹여 키워야 하는 것 아닐까? 송아지에게 인공유를 먹인다니 동물 학대는 아닐까? 혹시라도 이런 생각이 든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식용 송아지 사육을 둘러싼 진짜 동물 학대는 아직 운도 떼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아지 고기의 매력은 야들야들한 육질과 섬세한 맛이다. 근육이 발달할 만큼 키우지 않으므로 송아지 고기는 색깔이 돼지고기와 흡사한 분홍색을 띤다. 색깔만 봐도 우리가 아는 붉은 쇠고기의 진한 맛은 품지 않았으리라 어림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태생적인 조건만으로는 못 미더워 송아지는 도살 되기 전까지 일부 혹은 전부의 삶을 닭처럼 좁은 철창에서 키운다. 연한 육질과 섬세한 맛을 극대화하려고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이다.
물론 이게 전부도 아니다. 그 연한 육질과 섬세한 맛을 극단적으로 찾다 보면 단 며칠이나 몇 주만 키운 뒤, 혹은 어미 뱃속에 있는 상태에서 송아지를 잡기도 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송아지고기는 푸아그라(거위간)나 샥스핀(상어 지느러미)처럼 동물 학대로 얻는 식재료의 대표로 꼽힌다. ‘인도적인 식용 송아지 사육’의 개념이 유럽에서 논의 및 적용되고는 있다. 하지만 선별을 거쳐 어미소로부터 최대한 빨리 떼어 놓은 뒤 인공유를 먹이는 사육의 기본은 바뀌지 않는다. 이런 사정을 알기에 음식평론가인 나도 송아지 고기를 먹지 않는다.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이중구는 마지막으로 위스키 한 잔을 스트레이트로 마시고는 개죽음을 당한다. 어떤 후폭풍이 닥칠지 뻔히 알면서 미련하게 ‘칼춤’을 춘 대가를 치른 셈이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이중구는 송아지 스테이크를 탐해 벌 받은 것이다. 말이 안 된다고? 너무 가혹하다고? 그래도 신의 손에 의해 죽은 셈이니 조폭의 파벌 싸움에서 밀려 맞아 죽은 것보다는 차라리 낫지 않을까. 어쨌거나 쇠고기는 먹을지언정 송아지 고기까지 탐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