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멋 좀 안다는 이들이 서울 청담동을 이야기하면 ‘박지원’이란 이름 세 글자가 꼭 나왔다. 멋쟁이 패션 피플들은 박지원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박지원이 문을 연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박지원이 해외서 수집한 가구들과 소품에서 당대의 트렌드를 읽었다.

스타 패션 디자이너로 꼽히던 박지원씨. 2006년 한국을 떠난 그는 최근 유럽에서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에세이를 출간했다. 박씨는“지금이 인생의 전성기 같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국내 1세대 패션 디자이너 김행자의 딸로 모녀(母女) 디자이너 시대를 연 박지원(56)씨. 이화여대 서양화과와 미국 파슨스 디자인학교를 졸업한 해외 유학파로 당시 미국 패션지 ‘보그’가 꼽은 ‘유망 디자이너’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03년 그의 성(姓)을 딴 식당 ‘파크(PARK)’는 연예인 아지트로 꼽힐 정도로 인기였다. 이국적인 외모에 커피 CF 모델로도 활동하는 등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화려함의 극치인 청담동에서도 단번에 시선을 끌었다.

2006년 돌연 한국 생활을 청산하고 유럽으로 떠났던 그가 16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그동안 유럽에서 겪었던 삶을 적은 에세이 ‘애플타르트를 구워갈까 해’를 최근 출간했다. 3~4년 전부터 소셜미디어에 올린 짧은 글과 사진이 인기를 끌면서 박지원의 이름은 다시 사람들 이름에 오르내렸다. 에르메스 버킨 가방 대신 손에 들린 건 시장바구니였고, 화려한 청담동 건물 대신 텃밭을 가꾸는 삶이었다. 두꺼운 화장을 벗고 햇볕에 그을려 기미가 오른 민낯이 드러날수록 다시 박지원에 열광했고, 결국 책까지 출간하게 됐다.

최근 만난 그는 한국을 떠날 때를 회상하며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고 말했다. “돈과 술과 웃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허상 같았어요. 건강하지 않은 삶이었죠. 물질적으로는 최고였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최악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도 그의 ‘해방’을 부추겼다. 한 차례 결혼에 실패했던 그녀는 당시 축구코치로 한국을 찾았던 이탈리아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아이도 낳았다. 그와 함께 유럽에 살면서 재혼했다.

처음엔 낯선 땅에 적응하려 요리를 배웠다. 자신이 먹을 밥도 지을 줄 몰랐던 그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가정을 꾸렸던 그녀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프랑스 파리, 노르망디 등으로 거처를 옮기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어딜 가도 부엌만 있으면 살 곳이 됐어요. 요리를 할 줄 아니 사람들과 사귀는 게 무섭지 않더군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유럽이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더라고요.” 그는 “남녀든 친구든, 가족이든 기억 속 많은 부분에 밥이 있었다”면서 “함께 밥 먹으며 사랑하고, 다투고, 밥을 같이 먹지 않게 되면 헤어지게 된다”고 했다. 두 번째 남편과 9년 전 이혼해 떨어져 살게 된 두 아들 루카(16)와 지안(13)도 엄마를 밥으로 기억했다. 아이들이 외치는 ’엄마, 밥!’은 ‘엄마, 사랑해’의 다른 말이었다. “독일에 있는 아이들에게 갓 지은 밥을 먹이려고 파리에서부터 휴대용 가스레인지도 들고 다녔어요.”

책에는 백김치 볶음밥, 닭고기 미역국, 사과 술, 멸치 샐러드, 애플타르트 등 그녀가 아이들과 외국 친구를 사로잡았던 레시피도 들어있다. “반 평 부엌에서 요리하고, 글을 쓰고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있어요. 지금이 인생 최전성기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