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상어가 든 컨테이너 속 정어리라고 할까요? 패션계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컨테이너로 운반하던 정어리가 대부분 상했는데, 한 상자만 싱싱해서 알아보니 그곳에 작은 상어가 있었다고요.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보이려면, 상상력을 극한의 사지(死地)까지 몰고, 제 모든 걸 걸고 뛰는 거죠.”

서울 청담동 손정완 부티크에서 만난 디자이너 손정완은“처음엔 살아남으려 발버둥쳤지만, 이젠 세계 패션 무대에 한국을 알리는 사명감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패션 디자이너 손정완(62)은 살이 찌지 않는다. 마른 체형이기도 하지만 살이 찔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지난 2011년 뉴욕 패션위크에 처음으로 진출한 당시의 모습이나 10년이 지난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쇼 준비하고, 무대에 올리고, 매장을 돌고, 다시 디자인을 하는 일상에 느슨함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성공했으니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느냐’는 주변의 이야기에도 고개만 끄덕일 뿐. 그의 눈은 새로운 원단을 찾고, 체형을 다시 재단해 조각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건 무얼까 회의하며 다시 작업 현장을 찾는다. 현지 배경 없이, 10년간 뉴욕 쇼를 지속하는 한국 디자이너는 그가 유일하다.

지난 2월 그의 스무 번째 뉴욕 컬렉션을 마친 그는 최근 그의 청담동 부티크에서 만난 자리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바라고 뛰어들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한국에도 쿠튀르(고급 맞춤) 감각의 간결(미니멀)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껏 10년을 투자해 뭘 얻었냐고요? 그런 거 생각하면 가끔 회의적일 때도 있죠. 하지만 주위의 어떤 도움도 없이 홀로 뛰어들어 지금껏 살아남았고, 별다른 광고나 마케팅이 없었어도 할리우드 스타들이 뉴욕 쇼에 제 발로 걸어와 주는 걸 보면서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할 수 있어 감사한 거죠.”

손정완의 2022 F/W 컬렉션의 테마인 'ENCHANTING ROMANCE'
손정완 F/W 컬렉션의 테마. 진주 펄을 닮은 아이보리 컬러를 사용하여 여성의 우아함을, 로즈 핑크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련함을, 스파클링 그레이프는 고혹적이고 화려한 매력을 불러 일으킨다.
손정완

그의 말대로 패션계는 상어 같은 포식자들이 포진해 생태계를 좌우하기도 한다. 대형 자본을 앞세우거나, 미디어나 정·재계 인맥을 동원해 몸집을 키운 뒤 독립 디자이너의 생명력까지 위협하는 것이다. 쇼 한번 올리는 데도 억 대의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신선한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한들, 무대를 구하지 못하고, 유통 파트너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이내 브랜드를 접을 수밖에 없다.

“10년간 뉴욕 쇼를 하며 놀란 건,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어깨에 힘주지 않고 창작자를 굉장히 존중하고 편견 없이 바라봐주는 모습이었어요.” 영화 ‘해리포터’에서 스네이프 교수로 팬을 몰고 다녔던 앨런 릭먼(1946~2016)과의 인연이 대표적이다. “뉴욕에 왔던 초반 제 작업실이 소호 거리에 있었거든요. 통유리창 사무실이었는데 그 앞을 지나던 앨런 릭먼이 ‘흥미로워 보이는 데 뭐 하는 곳인가요?’라며 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한참을 둘러보고 재밌다고 하기에 ‘쇼 하니까 한번 와보라’고 얘기했죠. ‘설마 오겠어’ 했는데 정말 왔더라고요!”

손정완 디자이너 /고운호 기자

그렇게 ‘친구’가 된 앨런 릭먼을 비롯해 브룩 쉴즈, 켈리 러더포드 등 유명 스타들이 ‘친구’로 그의 쇼를 찾았다. 2015년엔 미국 뉴저지 주 마리스트(Marist) 대학에선 그를 초청 디자이너로 선정했다. 알렉 볼드윈의 딸 아일랜드 볼드윈이 쇼의 모델로 나서는 등 두 번의 특별 쇼를 했다. 또 현지 학생들에게 패션 강의도 했다. “한번은 제주 해녀를 주제로 쇼를 했는데, 현지 학생들이 한국에 관심이 굉장히 많더군요. 싸이의 히트곡 ‘강남스타일’(2012) 이후 한국 인지도가 올라갔던 때거든요. 지금요? BTS를 비롯해 한류 드라마 팬들까지, 한국, 한국, 하죠. 한국이 궁금하다며 쇼에 줄서서 찾아와요. ‘인증샷’도 필수이고요.”

올해 데뷔 36년인 손정완의 꿈은 100년 가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 “대를 이어도 살아남는 브랜드가 되고 싶지요. 해외 명품들처럼 디자이너가 죽어도 브랜드가 살아남는 일이 우리에겐 거의 없잖아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지금처럼 하던 일을 계속 꾸준히 해낼 수 있다면 어떤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