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1976년작 ‘택시 드라이버’는 상당히 스타일리시한 영화다. 이 영화의 패션은 007 시리즈나 ‘킹스맨’처럼 시각적으로 화려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물의 극단적인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드러낸다. 볼 때마다 그 정교한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의상은 M-65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5년 미군에 도입된, 흔히 국방색이라고 부르는 ‘OG-107’ 컬러의 야전용 재킷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군대에서 채택한 수많은 필드재킷(field jacket)이 있지만 그 중에서 단 하나를 꼽으라면 M-65일 것이다. ‘택시 드라이버’는 이 옷을 가장 인상적인 모습으로 화면에 등장시킨 영화다.

트래비스가 입은 M-65 재킷. 왼팔에 '킹콩 중대' 마크가 보인다. /컬럼비아 픽처스

M-65가 반세기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다양한 소재와 컬러로 만들어져 팔린다는 사실은 이 옷이 고전(classic)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가끔 영화와 똑같이 ‘킹콩 중대’(주인공이 소속됐던 것으로 보이는 가상의 부대) 마크까지 붙여 복각(復刻)한 옷도 볼 수 있는데 킹콩의 사나운 표정까지 비슷하게 재현한 물건은 많지 않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주인공 트래비스 비클(로버트 드니로)은 불면증에 시달리며 야간 택시를 몬다. 처음에 그는 제법 해사했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드디어 말을 걸어보기로 결심한 날 빨간 코듀로이 재킷을 걸치며 설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애는 실패로 돌아가고 실망한 트래비스는 악(惡)을 척결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반영웅이 된다. 그 변곡점에 M-65가 등장한다.

트래비스가 이때 군복을 처음 입은 건 아니다. 사실 그는 첫 장면부터 전차병용 재킷을 입고 있다. 해병대 출신인 트래비스가 기갑 병과였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좁은 탱크 안에서 거추장스럽지 않도록 기장을 깡총하게 줄인 이 재킷은 택시를 운전할 때도 확실히 간편했을 것이다. 이 옷이 일종의 작업복이었다면 M-65는 행동 개시를 알리는 선언과도 같다. 옷장에 간수하던 그 재킷을 꺼내 입을 때, 두꺼운 장갑(裝甲)을 두른 탱크에서 뛰쳐나와 백병전에 돌입하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택시 드라이버'의 포스터. 트래비스가 기장이 짧은 전차병용 재킷을 입고 있다.

결심을 굳힌 트래비스가 갈색 가죽 부츠를 닦는 장면이 있다. 대검을 숨긴 부츠는 신발이 아니라 무기다. 그래서 권총을 매만지고 칼을 예리하게 갈면서 두 종류의 구두약에 불을 붙여 녹여가며 정성껏 부츠를 닦는 것이다. 30초도 안 되는 이 짧은 장면을 나는 좋아한다. 구두 손질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고 믿는데(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여 성과를 보는 행위가 대개 그렇다) 이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에 누군가 동의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전투를 앞두고 무기를 손질하는 데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다는 전술적 목적도 있지만 긴장을 가라앉히고 전의를 가다듬는 심리적 의미도 있을 것이다.

트래비스의 극적 변신은 모호크(mohawk) 헤어스타일로 완성된다. 미국 원주민 모히칸족 전사들의 머리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모호크는 머리 양옆을 삭발하고 가운데에만 좁다랗게 머리카락을 남긴 스타일이다. 트래비스는 M-65로 갈아입은 뒤에도 한동안 순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처음의 머리 모양을 유지하다가 거사 직전에 이르러 모호크 스타일로 머리를 민다. 자신의 몸을 내던져 추악한 세상에 균열을 만들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트래비스가 처음 이 머리를 하고 등장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목 아래를 한참 비추다가 서서히 시선을 올려 머리를 극적으로 부각시킨다. 이 스타일리시한 영화의 백미다.

영화 초반 데이트에서 빨간 코듀로이 재킷을 입었던 트래비스(왼쪽)와 후반부에서 M-65를 입고 모호크 머리를 한 모습. 차기작 때문에 드니로가 실제 삭발을 할 수 없어서 가발로 특수 분장을 했다. /컬럼비아 픽처스

전사들의 머리 모양이었기 때문인지 이 스타일은 용맹의 상징이라는 의미를 얻었던 것 같다. 한 인터뷰에서 스코세이지 감독이 이 헤어스타일의 등장 배경을 설명한 적이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특수부대 출신 친구로부터 ‘병사들이 정글에 들어갈 때 이 머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내용이다. 위험한 임무에 앞서 용기를 북돋우고 적에게 위협적인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미군 공수부대원들이 노르망디 상륙 D-데이를 기다리며 비행장에서 서로 모호크 스타일로 머리를 깎아 주는 장면이 나온다. 정확한 고증으로 정평이 난 작품답게 모호크 머리를 한 공수부대원들의 모습이 실제 사진으로도 남아 있다.

드니로는 신들린 듯한 연기를 보여준다. 패션 덕에 그 연기가 100%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빨간 코듀로이 재킷을 입은 트래비스와 초록색 M-65를 걸치고 옆머리를 밀어버린 트래비스 사이의 간극을 가늠해본다. 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적색과 녹색이 색상환에서 서로 대척점에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