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민기 기자의 '신사의 품격'

신문사가 배경인 영화는 어쩐지 회사에 나와 있는 기분이 들어서 손이 잘 안 가는데 일단 시작하면 또 금방 빠져든다. 직업적으로 공감하는 장면이 많아서일 것이다. 로버트 레드퍼드가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를 연기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도 그랬다. 더구나 이 영화엔 코듀로이(골이 지도록 짠 옷감) 슈트라는 뜻밖의 발견이 있었다.

워싱턴포스트 입사 9개월 차인 우드워드는 황토색 코듀로이 슈트를 즐겨 입는다. 수첩을 들고 펜 끝을 씹으며 취재에 골몰할 때, 그렇게 모은 팩트를 편집국장에게 보고하고 “한번 잘 써봐”라는 허락을 받아낼 때 이 옷을 입었다. 선잠에서 깨어난 새벽, 비밀 취재원 ‘딥 스로트’를 만나러 달려갈 때도 황급히 꿰어 걸친 이 옷은 젊은 사건 기자에게 병사의 전투복과도 같다. 지적이면서도 활동적인 면모, 조금 서투르지만 신참다운 패기를 코듀로이 슈트가 드러낸다. 탄탄하면서도 포근한 코듀로이는 노동자들의 옷에 주로 쓰이다 1960년대 들어 대학생과 청년들이 입으면서 크게 유행했다. 이런 배경에서 묻어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에서 수첩을 들고 법정에서 취재 중인 기자 밥 우드워드. /워너브러더스

우드워드의 파트너 칼 번스타인 역은 더스틴 호프먼이 맡았는데, 그 역시 ‘졸업’(1967)에서 황토색 코듀로이 재킷을 입었다. 이 재킷은 ‘졸업’의 포스터에도 등장한다. 두 명배우가 비슷한 차림새를 보여준 게 그저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이 옷이 시대의 상징 가운데 하나였다고 하는 쪽이 타당할 것이다.

코듀로이는 한국에서 ‘골덴’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하다. ‘골덴바지’라는 말이 굳어지면서 골덴은 곧 바지인 것처럼, 특히 아동복 바지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으나 어엿한 슈트로 입어도 멋지다. 녹색이나 붉은색처럼 보통의 슈트로 엄두 내기 어려운 색상도 코듀로이로는 입어볼 만하다고 생각되니 묘한 일이다(다만 채도는 낮추는 쪽이 안전하다). 골의 굵기로 느낌을 달리할 수도 있다. 굵을수록 캐주얼 느낌이 강해지고 반대로 골이 가늘어지면 벨벳처럼 우아한 분위기가 난다.

우드워드는 거의 단벌신사에 가깝지만 셔츠와 넥타이는 자주 바뀐다. 가만 살펴보면 코듀로이 슈트가 버튼다운 셔츠나 니트 넥타이와 잘 어울린다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셔츠 깃을 풀어헤치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걸친 우드워드의 슈트 차림은 사실 아주 말끔하지는 않다. 그래서 실감난다. 칸막이도 없이 부서마다 명판을 천장에 매달아놓은 신문사 편집국, 저마다 전화 돌리고 기사 쓰느라 부산한 그곳에 지나치게 말쑥한 슈트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채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