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 '미친년들 #5'(1999). /아라리오갤러리

여기, 기어이 미쳐버린 여자들이 있다. 베개를 아기처럼 끌어안고 허공을 응시하는 여자, 한복 치마끈을 풀어헤친 채 실성한 듯 웃는 여자, 살림과 육아의 난장 속에서 의자에 앉아 정면을 쏘아보는 여자….

‘1세대 페미니스트 사진 작가’로 불렸던 박영숙(1941~2025)의 대표작 ‘미친년 프로젝트’다. 사회적 억압에서 탈피해 스스로 재탄생한 여자들이 전시장에 소환됐다. 지난해 작가 별세 이후 첫 개인전인 ‘보라, 저 여자가 노래하고 춤춘다’가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제목은 시인 김혜순이 작가에게 선물한 시 ‘꽃이 그녀를 흔들다’에서 따왔다. “여자가 미치지 않고 어찌, 노래를 하고, 춤을 추겠는가. 보라, 저 여자가 노래하고 춤춘다. 땅이 미쳐 저 꽃이 핀다.”

제32회 ‘이중섭 미술상’ 수상자인 사진가 박영숙 /조선일보 DB

1963년부터 2005년까지 40여 년을 아우르는 출품작 42점이 전시장 3개 층을 채웠다. 1층 벽면에 걸린 사진 연작 ‘미친년 프로젝트’(1999~2019)는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인내와 침묵을 강요당했던 역사 속 모든 여인들을 위해 시작됐다. 지난 2020년 제32회 이중섭미술상 시상식에서 작가는 “‘미친년’은 동시대를 앞설 수밖에 없다. 억압에 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라며 “내게 ‘미친년’은 시대의 진취적 여성상”이라고 했다.

박영숙, '장면 38 Scene'(1966). /아라리오갤러리

중세 마녀 사냥에서 모티브를 얻은 포토콜라주 ‘마녀’, 중년 여성의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육체 그리고 성’, 꽃이 흐드러진 풍경 안에 여성 신체를 포착한 ‘꽃이 그녀를 흔들다’ 등 연작을 만날 수 있다. 4월 18일까지. 무료.

서울 삼청로 뮤지엄한미에서 27일 개막한 한국 사진가 4인전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육명심·홍순태·한정식·박영숙’(7월 19일까지)에도 박영숙의 사진 연작 ‘36인의 포트레이트’가 나왔다. 작가가 39세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뒤 “내 주변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어 또래 예술가들을 찍은” 연작이다. 시인, 소설가, 교수 등 36명을 카메라에 담았다. 뮤지엄한미 전시는 7월 19일까지. 성인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