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의 리더 RM이 지난해 11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CEO 서밋’에서 연설 후 인사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K’는 일종의 프리미엄 라벨입니다. 우리 조부모 세대가 싸워서 만들어 낸 품질 보증 같은 것이죠.” BTS의 리더 RM은 해외 매체 인터뷰에서, “‘K’라는 꼬리표가 지겹지 않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꼬리표(label)를 프리미엄 라벨로 바꾸는 센스와 한국에 대한 자부심, 긍정적인 태도가 드러나는 답변이었다.

K팝의 과도한 경쟁과 완벽주의가 한국 문화의 특징이냐는 비판적인 질문에도 그는 한국 역사와 연결지어 설명했다. “한국은 침략을 당했고 완전히 폐허가 됐고, 나라가 둘로 갈라졌습니다. 불과 70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모두가 스스로를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BTS의 리더 RM이 2023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BTS 10th Anniversary FESTA'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오후 5시, 김남준입니다'를 진행하고 있다. /빅히트 뮤직

BTS가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하기까지, RM이 맡은 역할은 단순한 리더 이상이었다. 그는 한국과 세계 사이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번역하는 통역사에 가까웠다. 시트콤 ‘프렌즈’를 보며 영어를 배웠다는 그는 2018년 UN 연설, 2022년 백악관 방문 등 굵직한 순간마다 그룹을 대표해 앞에 섰다. 훗날 “‘내가 외교관인가?’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 문화와 예술을 자신만의 언어로 해설하며, BTS를 넘어 한국이라는 나라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문화 외교관’이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았다.

본명은 김남준.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경기도 일산에서 자랐다. 처음부터 아이돌을 꿈꾸진 않았다. 래퍼가 되고 싶었고, 그보다 더 어릴 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직접 작사한 랩을 힙합 커뮤니티에 올리고, 홍대에서 공연을 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0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 BTS의 첫 번째 멤버가 됐다. 방시혁 당시 빅히트 대표는 그의 실력을 보고 ‘랩몬스터(랩 괴물)’라는 이름을 붙였고, 과거 한 방송에서 “RM은 방탄소년단을 만든 계기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빅히트 뮤직

BTS의 메인 래퍼로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무게감 있는 랩을 들려주면서도, 작사·작곡에 참여해 곡의 메시지와 앨범의 흐름을 설계해 온 멤버이기도 하다. 시적인 표현과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는 ‘지적인 래퍼’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내면을 파고드는 가사가 특징이다.

서울 한강변을 걸으며 썼다는 노래 ‘리플렉션(Reflection)’에서는 자기 혐오를 이렇게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세상은 절망의 또 다른 이름/나의 키는 지구의 또 다른 지름/나는 나의 모든 기쁨이자 시름/매일 반복돼 날 향한 좋고 싫음”. 이 노래의 마지막 구절 ‘I wish I could love myself(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는 BTS가 전 세계 청춘들에게 전한 메시지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너 자신을 사랑하라)’로 연결된다.

2024년 솔로 2집 'Right Place, Wrong Person' 컨셉 포토 /빅히트 뮤직

RM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독서’다. 그의 소셜미디어에는 독서하는 모습이나 읽고 있는 책들이 자주 올라온다. 유튜브 영상 속 RM이 읽던 책이 팬들에게 포착되면서, 절판됐던 책이 20년 만에 재출간되는 일도 있었다. 니체와 헤르만 헤세, 이성복의 시집을 읽고 전국 곳곳의 미술관을 찾아다니는 리더는 K팝에서 보기 드문 존재였다. 청춘의 불안, 시대의 고민을 담아온 BTS의 노랫말에는 언제나 그의 성찰이 녹아 있다.

세계적인 스타지만 그는 항상 스스로를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이라고 말해왔다.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혼자 전시회를 둘러보는 소탈한 일상 역시 그의 매력이다. 2022년 발표한 첫 솔로 앨범 ‘인디고(Indigo)’에서 그는 고속도로 대신 오솔길을, 불꽃 대신 들꽃을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짧고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이 아닌, 은은한 들꽃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담겼다. “타는 불꽃에서 들꽃으로 / 소년에서 영원으로 / 나 이 황량한 들에 남으리.” 그가 앞으로 걸어갈 오솔길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