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가방에 시집 한 권과 만년필 한 자루쯤 있을 것 같은 지적인 분위기를 풍겨야 ‘느좋’(느낌 좋다는 뜻의 MZ 신조어)이란 얘기를 듣는다. 물론, 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려면 고도의 꾸밈 노동이 필요하다. 체크무늬 셔츠 단추를 목까지 잠근 꽉 막힌 공대생 같은 느낌은 곤란하다. 어디서든 시상(詩想)을 떠올릴 수 있는, 차분하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시인처럼 보여야 최신 유행 완성이다.

작년 12월 배우 김고은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명품 브랜드도 ‘포엣코어’ 유행에 올라탔다. /인스타그램

‘텍스트힙(text hip)’ 유행이 출판 시장을 넘어 패션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이미지 기반 소셜미디어인 핀터레스트가 선정한 올해의 패션 트렌드는 ‘포엣코어(poetcore)’다. 시인의 감성을 담은 지적인 무드의 패션을 일컫는다.

핀터레스트 집계에 따르면, 2024년 9월부터 2025년 8월까지 ‘포엣코어’ 단어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7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인 미감(the poet aesthetic)’을 검색한 경우는 같은 기간 175% 뛰었다. 올 초 국내외 패션지 모두 일제히 ‘포엣코어’ 트렌드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 뉴욕포스트는 “초디지털화된 세상에서 부드러운 감성과 느린 속도감을 좇는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디올이 올해 봄·여름 컬렉션에 선보인 책 표지 디자인의 ‘북 토트(가방)’. /Dior

오버사이즈 터틀넥, 색이 바랜 빈티지 가죽 재킷, 한쪽으로 메는 메신저백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뿔테 안경, 넥타이, 직사각형 사첼백(손잡이와 어깨끈이 달린 클래식한 가방) 등도 ‘포엣코어템’으로 꼽힌다. 국내 연예인 중에서는 검은 뿔테 안경을 즐겨 끼면서 엉뚱한 예술가 느낌을 풍기는 배우 구교환 등이 대표 주자다. 배우 김고은의 담백하고 꾸밈없는 평상복 패션도 포엣코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시인들은 실제로 포엣코어 패션을 즐길까. ‘포엣코어’란 용어를 처음 들어봤다는 한 시인은 “빈티지 재킷과 안경은 확실히 시인들 사이에서 종종 보이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시인은 “고프코어(gorpcore·투박한 아웃도어 패션) 룩을 등산가들이 굳이 입지 않듯 시인들도 의도적으로 포엣코어 유행을 따르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