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는 오는 5월 일본에서 출간 예정인 차기작 소설집에 대해 살짝 귀띔했다. “새로운 시대의 여성과 커플을 그렸습니다.” /©Toshihiko Fukuda

“이 책을 출판했으니, 더는 후회가 없다. 은퇴해도 상관없다.”

스물네 살 때 세상에 내놓은 소설집 ‘키친(1988)’이 전 세계 500만 부나 팔리며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요시모토 바나나(62). 어느덧 환갑을 넘긴 그가 최근 출간된 신작 소설집 ‘손모아 장갑과 가여움’(민음사)의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물론 은퇴 선언은 아니다. 오는 5월 일본에서 차기작 출간도 예정돼 있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듯 이번 책 출간으로 두 번의 산을 넘은 것 같다는 소회를 밝힌 바나나는 “(그래도) 세 번째 산, 세 번째 정상이 기다리고 있다면 기쁘겠다”고 했다. 여전히 “소설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는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코로나 팬데믹 시작부터 끝 무렵까지 쓴 단편 여섯 편이 실렸다. 헬싱키·로마·타이베이·홍콩을 비롯해 가나자와·히치조 섬 등, 여행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묘하게 애틋하다. 작가는 “언제 다시 갈 수 있게 될지 모르는, 그리운 해외를 그렸다”며 “여행에 대한 동경과 갈증이 잘 드러났다”고 했다. 정작 자신은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현지에 사는 사람들과 여행 중인 저의 일상이 겹치는 순간만큼은 좋아한다”고 했다. “단골 가게가 생기고, 매일 인사하는 사람이 생기면, 여행의 짧음 속에서 인생이 서로 교차하는 신비로움에 감동합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쉽고 간결한 문장은 깃털처럼 가볍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묵직한 솜털 이불이 되어 독자를 감싸 안는다. 폭신폭신하다. “보다 자연스럽게, 보다 가볍게” 읽히게끔 썼지만 “보다 많은 눈물과 피를 흘렸다”는 말 속에 많은 함의가 담겼다. 바나나는 “내 소설의 주요 주제는 언제나 ‘상실’이었다”고 했다. “더없는 가여움을 자명한 사실로 지니고 있는 인류와 그 빛나는 행복을 태우고 언제 어디서든 지구는 돈다”(124쪽). 상실을 소재로 다루지만, 가벼움과 무거움을 넘나드는 명랑함도 있다.

/민음사

이번 소설집을 아우르는 정서를 묻자 “인생은 여행”이란 답이 돌아왔다. 책 속 인물들은 상실을 경험하고 여행을 떠난다. 그가 이번 책에서 가장 아끼는 단편으로 꼽은 표제작도 마찬가지. 양측 어머니의 반대에 결혼을 미루던 한 커플이 비슷한 시기에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헬싱키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이 단편엔 여러 기억이 담겼다. 바나나는 아이와 함께 헬싱키를 여행한 기억을 소설에 녹였다. 여행 직후 접한 비보(悲報)도 영향을 미쳤다. “여행 직후 소중한 친구가 세상을 등졌어요. 그래서 이 여행을 생각할 때마다 그 친구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성실한 작가다. 국내에 번역된 책만 20여 권에 달한다. 40년 가까이 소설을 써온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유롭게 쓰는 것과 자유를 추구하는 감각”이다. 바뀌지 않은 것은 “1인칭으로 쓰는 중단편 작가”라는 정체성이다. 그는 장편소설을 쓰면서도 “중단편이 쓰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고 할 정도로 중단편을 선호한다.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는 “다양한 나이대와 다양한 성별을 1인칭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바나나는 “읽고 나면 조금 가벼워지는 듯한 소설. 그런 정도가 좋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이에 작가에게 “당신의 소설이 지향하는 것이 치유나 힐링인가” 물었다. 작가는 “치유라는 것은 깊은 흙탕물 속에 잠겨 빈 페트병을 주워 오는 행위와 유사한 체험”이라고 했다. “절대 쉽거나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흙탕물을 깨끗이 씻어낸 페트병에 새 물을 담을 때, 무언가 달라져 있죠. 그런 것을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