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민권 운동가 말콤 X(1925~1965)는 1965년 2월 21일 뉴욕 할렘가에서 연설 중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군중 속에서 두 남자가 쏜 총알 16발을 몸에 맞았다.
““형제, 자매들…” 총소리가 연달아 울리자 말이 끊어지고 맬콤 X(39)는 연단에 쓰러졌다. 가슴과 목에서 시뻘건 피가 솟아 나왔다. “저것들이 남편을 죽이는구나… 아! 저것들이 남편을 죽이는구나….” 베티 여인은 청중 속에 끼어서 남편이 총탄에 쓰러지는 것을 똑똑히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1965년 2월 21일 밤 뉴욕시 할렘의 한 흑인 집회는 이래서 피를 보게 되고, 중단되었고, 한때 흑인회교단의 영수로 군림했던 맬콤 X의 생애는 끝났다.”(1965년 2월 23일 자 2면)
말콤 X의 원래 이름은 말콤 리틀(Little). 백인 노예주가 지은 성을 버리고 ‘X’라고 바꿨다. 알 수 없는 아프리카 선조의 성을 뜻한다. 20대 때 절도죄로 들어간 감옥에서 엘리야 무하마드가 창설한 흑인 이슬람 단체 ‘네이션 오브 이슬람’(흑인회교단·회교민족)을 알게 되고 출옥 후 이 단체의 열성 활동가로 명성을 얻었다.
말콤 X는 1963년 11월 케네디 대통령 피살을 계기로 흑인회교단과 절연했다. 케네디 피살을 놓고 “인과응보”라고 얘기한 말콤 X에게 조직에서 발언 금지령을 내리자 이에 반발했다고 한다. 말콤 X가 케네디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하려고 하자 조직에서 못하게 막았다는 설명도 있다.
“맬콤 X가 흑인회교단에서 손을 뗀 것은 고 케네디 대통령 때문이었다. “미국 안에 흑인공화국을 세워야 한다”면서 케네디가 살아있는 동안은 과격하게 싸워온 그였지만 케네디가 서거하자 유감과 애석한 뜻을 미국 국민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나 약 15만명의 회원을 가진 이 단체의 과격자들은 그것을 못하게 말렸고 그 때문에 그는 흑인회교단을 박차고 뛰어나왔던 것이다.”(1965년 2월 23일자 2면)
말콤 X를 살해한 이들은 흑인 회교단 과격파였다. 피살 당시 다섯 살이었던 말콤 X의 딸 쿠빌라흐 샤바즈는 아버지의 죽음을 어머니 베티 샤바즈와 함께 현장에서 지켜봤다. 딸은 30년 후인 1995년 1월 경찰에 체포됐다. 아버지 살해의 배후라고 여긴 흑인 회교단 지도자 루이스 파라칸을 청부 살인하려 했다는 혐의였다.
“말콤 X의 딸 쿠빌라흐 샤바즈(34)는 12일 미니애폴리스에서 중범죄 혐의로 검거됐으나 보석금 1만달러를 내고 일단 풀려났다. 그녀는 흑인운동 단체 회교민족을 이끌고 있는 루이스 파라칸이 아버지의 죽음과 직접 관련이 있다며 그를 살해하기 위해 전문 킬러에게 의뢰금을 지불한 혐의를 받고 있다.”(1995년 1월 14일 자 7면)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쿠빌라흐 샤바즈의 아들인 말콤 X의 외손자 말콤 샤바즈는 열두 살 때 집에 불을 질러 할머니이자 말콤 X의 아내인 베티 샤바즈를 끝내 죽음에 이르게 했다.
“미국의 전설적 흑인 지도자 말콤 X의 부인이 함께 살던 손자의 방화로 중태에 빠졌다. 65년 암살된 말콤 X의 부인 베티 샤바즈(61) 여사는 1일 새벽(현지 시각) 뉴욕시 브롱스 아파트 자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전신 80%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샤바즈 여사는 소방관들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화상이 심해 생명이 위독한 상태. 경찰은 열두 살짜리 손자 말콤이 “할머니와 살기 싫다”며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고 밝혔다.”(1997년 6월 3일 자 9면)
말콤 X가 흑인 민권운동을 벌이던 때 조선일보 지면엔 ‘미국을 흔드는 검은 민족주의’ 제목으로 그의 활동이 자세히 실렸다.
“맬콤 X는 흑인들의 폭력 행사에 대해서는 이를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우리 흑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필요하다면 소총 부대라도 만들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천이백만이나 되는 미국 흑인들을 규합하기 위해 그가 추진하고 있는 방법은 ‘검은 정당’을 결성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은 아무 자리에도 출마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 맬콤X는 그의 정당이 흑인들의 자유와 정의와 평등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1964년 3월 31일 자 조간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