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학 창시자' 요한 갈퉁.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요한 갈퉁(1930~2024)은 1975년 9월 9일 광복 30돌 기념 ‘한반도 통일과 평화’ 주제로 서울에서 열린 국제 학술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초강대국 간에 참다운 협력이 이루어져 안전한 국제적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남북한 간에 경제적·정치적 협력이 가능할 것”(1975년 9월 10일 자 3면)이라고 전망했다.

요한 갈퉁은 ‘평화학’을 창시한 학자다.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여러 차례 방한했다. 1996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북한은 동독처럼 붕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통일 독일처럼 북한도 한국에 흡수될 것이란 전망이 크던 때였다.

1975년 9월 10일자 3면.

“(흡수 통일은) 시나리오로는 유용하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북한의 보통 주민들 간의 유대는 생각보다 강한 것 같다. 그리고 한국 체제에 대한 존경심도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높은가 하는 점도 의문이다.”(1996년 10월 11일 자 23면)

1996년 10월 11일자 23면.

갈퉁은 전쟁이 없는 ‘소극적 평화’와 구조적 폭력에서 해방된 ‘적극적 평화’를 구분했다. 저서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에서 ‘적극적 평화’는 평화적 수단으로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갈퉁은 목표로서의 평화뿐 아니라 수단 또는 과정으로서 평화를 중시한다. 평화는 어떤 경우라도 평화적 수단으로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의 이런 생각들이 평화, 갈등, 개발, 문명 이론의 네 가지 주요 분야로 나뉘어 상술되고 있다.”(2000년 9월 30일 자 39면)

2000년 9월 30일자 39면.

2015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말하는 ‘적극적 평화’에 대해 “내가 주창한 ‘적극적 평화주의’를 도용(盜用) 말라. 아베 정부가 걷는 길은 ‘적극적 평화’의 정반대”라고 비판했다.

“‘적극적 평화주의’는 아베 총리가 2012년 말 2기 집권을 시작한 뒤부터 안보 이념으로 줄곧 내세운 슬로건이다. 아베 정권은 현행 평화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자위대 해외 파병 및 집단적 자위권 발동 등 오랜 군사적 숙원을 이 슬로건을 내세워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14일 발표한 종전 70주년 담화에도 이 말이 들어갔다. “적극적 평화주의의 기치를 높이 내걸며 세계 평화와 번영에 공헌해 나가겠다”고 한 부분이다. (중략) 갈퉁 박사는 “아베 총리가 말하는 평화는 군사력에 기반하는 것으로, 전쟁을 거부하는 일본 평화헌법이야말로 진정한 적극적 평화주의를 상징한다”고 했다.”(2015년 8월 24일 자 A19면)

2001년 10월 31일자 18면.

갈퉁은 일방주의적인 미국 정책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하영선 한국평화학회장과 대담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면죄부를 줄 순 없으나 미국 중동 정책의 오류가 먼저”라고 말했다.

“테러와 싸우기 위한 세계 네트워크는 필요하지만, 미국 주도가 아니라 유엔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미국은 행동에 나서기보다 깊은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타 문화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교육과 대화가 필요합니다.”(2001년 10월 31일자 18면)

갈퉁은 북한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인 2000년 방한 때 “북한에서도 머지않아 5·18과 유사한 민중운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그것이 바로 통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한반도 냉전을 녹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아직도 그때는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