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출판된 내 책을 드리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우리 가족은 30년전 튀르키예를 떠나 한국으로 왔다. 어머니는 고정된 직장 없이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를 두고 걱정을 늘어놓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직접 쓴 책을 들고 무뚝뚝하게 “집에 이거 한 권 둬…” 하고 들이밀자, 어머니는 왜 한국어로 된 책을 건네는지 의아해했다.
그러다 띠지에서 내 사진을 발견하곤 이게 뭐냐고 물었다. 알파벳으로 표기된 이름을 읽고 나서야 내가 쓴 책임을 눈치챘다. 어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번진 흐뭇한 미소를 애써 감추시며 “그렇게 밤낮없이 일해서 이거 한 권 나온 거야?” 하고 인색하게 말했다. 나의 무뚝뚝함이 그들에게서 나온 것임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어서 책을 받아든 아버지는 어색한 칭찬을 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애꿎은 팔만 긁고 있는데, 아버지가 책장을 넘기며 당신이 읽지 못할 글자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막막함이 비쳤다. 그 모습에 울음이 차올라 겨우 삼켰다. 머쓱해하며 무슨 내용이냐고 묻는 아버지에게 나는 또 무뚝뚝하게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수필로 쓴 거야’ 하고 시큰둥하게 답했다.
어머니는 돋보기 안경을 꺼내 쓰곤 다시 책을 집어들어 내 이름 옆에 쓰인 ‘산문집’이라는 글자를 더듬더듬 읽었다. 그리곤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내가 대충 이런 뜻이라고 설명해주자 차마 책 안에 쓰인 단어들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는 듯 한숨을 쉬며 책을 내려놓았다. 이국의 언어로 쓰인 딸의 책을 앞에 둔 그들의 막막함을 더는 견디기 어려워 나는 화장실로 도망쳐 몰래 눈물을 닦았다.
우리 가족에겐 언어가 없다. ‘고맙다’ ‘미안하다’ ‘자랑스럽다’ ‘사랑한다’ 같은 말들을 어색하지 않게 할 능력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낼 공통의 언어도 없다. 부모님의 언어로 나의 느낌을 표현하자니 많은 것이 비어있고,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부모님이 온전히 알아들을 수 없다. 30년 전 어린 자녀들을 안고 국경을 넘은 그 용기 안에 이런 것들도 들어있었을까? 이제 그때의 부모님 나이가 된 나는, 그들이 짊어졌던 무게를 헤아릴 수 없어 아득해지기만 한다.
베튤 준불·배우 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