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미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이번 바흐 ‘골트베르크 변주곡’ 음반은 팬들과 함께 완성시킨 음반이다. 2023년 영국 명문 음반사 데카(Decca)와의 전속 계약을 맺은 뒤 벌써 네 번째 음반. 지난해 4월 미 뉴욕 카네기홀 실황 공연을 담았다. 임윤찬은 카네기홀 무대에 오르기 앞서 고양아람누리와 통영국제음악제의 국내 관객들 앞에서도 수 차례 같은 곡을 연주했다. 결과적으로 관객 입장에서는 이 라이브 음반이 완성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셈이 됐다.
‘골트베르크 변주곡’은 유명한 아리아(Aria)가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고 그 사이에 서른 개의 변주곡이 있는 ‘수미상관(首尾相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임윤찬은 본래 협연보다 독주곡에서 더욱 강한 개성을 드러내는 피아니스트. 첫 아리아부터 과감하고 자유로운 꾸밈음이 인상적이었다. 반복구에서는 빠르기를 함께 조절하면서 꾸밈음이 더욱 돋보이도록 했다. 연주자에게 재량을 부여하는 바로크 음악에 어쩌면 그가 이끌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리아 사이의 변주들이 하이라이트였다. 임윤찬은 흡사 변주 하나하나를 분해해서 재조립하는 것만 같았다. 때로는 가공할 만한 속도전(5·14·20·26번 변주)을 펼쳤고, 반대로 속도를 뚝 떨어뜨려서 아찔한 낙폭을 강조하는 경우(15번 변주)도 있었다. 흡사 ‘변주의 변주’처럼 과감하게 환골탈태 시킨 변주(7번)도 있었다. 옥타브를 넘나드는 피아노가 마치 플루트와 피콜로 같은 목관 악기처럼 들렸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가면 바로크와 재즈의 경계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서른 개의 변주에도 일정한 질서는 존재한다. 흡사 ‘돌림 노래’처럼 주제 선율을 빼닮은 선율들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서 등장하는 카논(canon)이 세 곡의 변주마다 하나씩 등장한다. 본래 시간의 예술인 음악에 다층 건물 같은 공간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 카논이 돌아올 때마다 임윤찬은 꼬리를 물고서 뒤이어 등장하는 주제들을 강조하면서 입체감과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서른 개의 변주 가운데 중간 반환점에 해당하는 16번 변주에서는 힘 있고 웅장한 바로크 서곡(Ouverture)의 성격을 부각시켰고, 반대로 슬프고 처연한 낭만주의 독주곡(25번 변주)처럼 연주하기도 했다. 이처럼 변주 하나하나에도 분명한 성격과 색깔을 부여하려는 것만 같았다. 이를테면 서른 곡의 변주 사이의 연속성보다는 차별성에 착안한 해석에 가까웠다.
지난해 실연(實演)에서는 결승점을 앞둔 막판 스퍼트처럼 마지막 서너 곡의 변주를 몰아서 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뒤 찰나의 정적을 두고 마지막 아리아로 되돌아가면서 드라마적 성격을 부각시켰다. 이번 음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음반 해설에서 그는 “음악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삶의 여정”에 이 곡을 비유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트베르크 변주곡’ 음반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그가 사랑했던 캐나다의 전설적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 이후 가장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음반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다. 전체 시간 1시간 1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