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영화는 정답이 가능한 장르다. 고수라면 적(敵)과 관객의 심장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다. 대한민국 감독 중 액션의 정답률이 가장 높은 감독 류승완이 신작 ‘휴민트’(11일 개봉)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액션에 진한 멜로를 장착했다. 지난해 청룡영화상 무대를 사로잡은 배우 박정민의 무심한 듯 강렬한 눈빛이 뜨거운 멜로 엔진으로 가동한다. 완숙한 매력의 조인성, 변신의 귀재 박해준이 가세해 ‘극장 영화’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반가운 대중 영화로 설 연휴 관객을 찾아왔다.
‘휴민트’는 박정민이 액션으로 쓰는 처절한 러브레터다. 그가 연기하는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은 북한 여성 실종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다.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은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국정원 조과장(조인성)은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신세경)를 휴민트(정보원)로 포섭한다. 그녀는 박건이 끝내 지우지 못한 옛사랑. 각자의 목표와 욕망이 뒤엉키며 박건은 사랑을 위해, 조과장은 사람을 위해 사지(死地)로 뛰어든다.
시각은 물론 청각, 특히 통각을 아프도록 자극하는 류승완표 액션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까마득한 건물 계단 아래로 떨어지는 격투신은 뼈가 으스러질 듯하고, 세 남자가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삼각 결투신은 최고조의 긴장으로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킨다. 경매장의 최후 대결에선 실제 발사 가능한 총알 개수까지 계산한 치밀한 총격전으로 시원한 쾌감을 선사한다. ‘한국 액션 영화에선 총알이 무한 발사된다’는 비판은 적어도 류승완 영화에서는 과거형이다.
‘밀수’(2023)에 이어 류 감독의 영화에 함께 출연한 조인성과 박정민은 최적의 연기 합으로 서로를 빛낸다. 박정민이 임무와 사랑을 두고 고뇌하고 흔들리는 사이, 조인성은 임무와 인간애를 지키려 결연한 눈빛으로 움직인다. 두 남자의 대치 혹은 공조가 맞아떨어지며 액션과 멜로가 절묘한 균형점을 찾았다.
조인성 액션의 진가는 도입부 1대8 대결에서부터 확인된다. 드라마 ‘무빙’에서도 블랙요원이었던 조인성은 ‘휴민트’에서 훨씬 절도 있는 리듬과 정확한 타이밍으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박해준의 변신은 ‘휴민트’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던 밉상 불륜남, 한평생 애순이만 바라본 ‘폭싹 속았수다’의 순정남은 이제 없다. 박해준이 연기하는 황치성은 볼펜 딸깍 소음과 A4 용지만으로 위협감을 발산하는 야비한 악인의 경지를 보여준다. 모든 사건의 한가운데서 채선화가 부르는 패티 김의 ‘이별’은 배우 신세경의 애절한 목소리를 만나 관객의 귓가에 오래 남을 노래가 됐다.
‘베를린’(2013)에서도 류 감독과 함께 작업한 조영욱 음악감독의 차갑게 조여드는 선율은 완성도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드러나지 않으며 내내 영화를 감싸는 조 감독의 음악은 ‘휴민트’의 뛰어난 조연이다. 후반부 분분한 눈발은 집요한 노고의 산물이다. 실제 라트비아 촬영 때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아 CG 스태프들이 기술력으로 살렸다. 이제 이 정도 완성도는 돼야 극장에서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휴민트’의 실시간 예매율은 약 40%(16만2000명, 9일 오후 10시 현재)로, 설 연휴 경쟁작인 ‘왕과 사는 남자’를 2배 가량 앞서며 1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