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윤찬(22)은 꿈에서도 독주회를 연다. 6일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 음반 발매를 앞두고 그는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며칠 전 꿈에서 리사이틀을 했는데, 1부에 쇤베르크의 ‘3개의 피아노 소품집’, 바흐의 ‘파르티타 6번’을 연주하고 2부에는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을 연주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이 곡들을 합쳐 보니 휴식까지 리사이틀 시간과 엇비슷한 2시간 안팎이다.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꿈은 얼마든지 꿀 수 있지만, 구체적인 곡명과 시간까지 맞아떨어질 줄은 몰랐다.
이번 신보(新譜)인 ‘골트베르크 변주곡’은 지난해 4월 뉴욕 카네기홀 실황을 담았다. 2023년 영국 명문 음반사 데카(Decca)와 전속 계약을 맺은 뒤 벌써 네 번째 음반. 지난해부터 미국·유럽뿐 아니라 통영국제음악제와 고양아람누리 등에서도 수차례 같은 곡을 연주해 화제를 모았다.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은 유명한 아리아(Aria)가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고 그 사이에 변주곡 30곡이 있는 ‘수미상관(首尾相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임윤찬은 이 곡을 ‘한 인간의 삶의 여정’에 비유했다. 그는 “아리아에서 시작해 30개의 인간적인 노래가 나오고 마지막에 아리아가 다시 나오는 구성에서 인간의 삶의 여정이 떠올랐다”고 했다. 스튜디오 녹음이 아니라 카네기홀 실황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음반으로, 그것도 카네기홀 공연 실황으로 낸다는 것은 피아니스트로서 가장 큰 영광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바흐는 소년 시절 임윤찬의 삶과 음악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다. 음반 출시를 앞두고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밝혔듯이 열세 살 때 스승 손민수 교수(미 뉴잉글랜드 음악원)를 처음 만났을 때 배우기 시작한 곡도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었다. 그 뒤에도 바흐의 독주곡과 협주곡들을 차례로 공부했다. 임윤찬은 “바흐를 깊게 알게 될수록 ‘골트베르크 변주곡’과 사랑에 빠졌다. 스승께서도 콘스탄틴 리프시츠, 피터 제르킨, 반다 란도프스카 등 10여 장의 음반을 빌려주셨고, 옛 친구들처럼 남아 있다” 고 회고했다. “당시 스승과 1년 내로 전곡을 연주하자고 약속했는데, 8년 만에 그 약속을 지키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모든 연주자들의 버전을 다 들어 보았는데, 곡을 깊이 공부하고 제 음악을 찾아가면서 궁극적으로는 제 마음 속에 있는 ‘골트베르크 변주곡’만을 믿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도 ‘한 인간의 삶의 여정’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흔히 바흐를 연주할 때면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는 “인간적이고 장난과 유머로 가득한 곡인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정 하나하나가 우러나오는 곡”이라며 “개인적으로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한없이 진지하게만 해석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바흐 당대의 유행가 선율을 대위법적으로 결합한 마지막 30번째 변주곡을 실례로 들면서 “인간적이고 유쾌하다”고 했다. 바흐를 만나게 되면 “같이 식사하고 나서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서 연주해 보고 싶다”고 답했다. 바흐는 두 대의 건반 악기를 위한 곡도 남겼지만, 현대식 피아노가 탄생하기 이전의 작곡가다. 이 때문에 크고 우렁찬 울림에 임윤찬보다 먼저 놀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임윤찬은 오는 6월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와 오는 11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에서 협연할 예정이다. 5월 국내 독주회에서는 슈베르트·스크랴빈의 곡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그는 “지금 제 마음 속에 있는 곡들을 고르게 됐다”고 했다. 나중에 연주하고 싶은 작곡가로는 슈만과 브람스를 꼽았다. “특히 슈만의 ‘환상곡’은 마흔 살 이후에야 정말로 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