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젤리피쉬'의 딸 '켈리'역을 맡은 백지윤(오른쪽) 배우와 엄마 '아그네스' 역 정수영 배우. /박성원 기자

처음 백지윤 배우를 만난 날을 기억한다. 2023년 늦가을 대학로의 한 카페. 어머니와 함께 나온 그는 인사는커녕 자리가 파할 때까지 눈 한 번 맞추지 않았다. 낯선 분위기에 긴장한 탓인지, 낯선 존재에 대한 불안감 탓인지. 그가 처음으로 말을 건 것은 첫 만남이 있고 나서 거의 석 달이 지난 뒤였다.

그해 겨울 나는 연극 ‘젤리피쉬’ 아카이브(공연 관련 자료를 수집·정리·보존하는 것)를 위해 일주일에 한두 번 연습실을 찾았다. 친근하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그는 딴청을 피우거나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불쑥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뭐 하는 분이세요?” 마치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건네는 질문 같았다. 그 질문을 시작으로 그는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격의 없이.

‘젤리피쉬’는 다운증후군이 있는 여성이 사랑에 빠지고, 임신과 출산을 겪는 이야기다. 주인공을 연기한 백지윤 배우 역시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2024년 쇼케이스를 거쳐 2025년 초연된 직후 국립극단의 초청을 받아 명동예술극장에서 재공연되었다. 내 역할은 쇼케이스까지라 초연 이후 연습실을 방문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한참 만에 다시 그를 만났다. 공연을 마친 뒤 분장실을 찾았을 때였다. 나를 먼저 발견한 그가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아무 망설임 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해파리처럼 투명한 사람이구나. 주저함도 망설임도 없이, 어떤 계산도 없이 속마음이 그대로 비치는 사람. 그러자 문득 ‘젤리피쉬’ 속 그의 대사가 떠올랐다. “투명해서 사람들이 내 속을 다 볼 수 있으면? 끔찍하겠다.” 그래서였을까.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경계했던 건.

그가 출연한 ‘젤리피쉬’가 지난 연말 동아연극상 작품상에 선정됐다. 이번 수상은 장애라는 조건을 고려한 배려가 아니라, 오롯이 배우의 연기와 작품의 완성도로 일궈낸 성취이다. 마침 26일이 시상식인데, 이번엔 내가 먼저 안아주며 축하를 전하고 싶다.

/김일송 책공장 이안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