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들어서기 전 이어폰을 빼는 것이 아쉬웠다. 제일 좋아하는 가사가 나올 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책상 서랍에서 라임 노트를 꺼냈다. 아직 담임선생님께서 들어오시려면 이십 분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라임 노트란 내가 찾아낸 라임들을 정리해 놓은 노트로 내 보물 1호라고 할 수 있다. 일찍 등교해 아이들과 선생님 몰래 라임을 찾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랩을 정말 좋아한다. 아이들은 말의 속도가 느리고 더듬으며 말하는 나를 말더듬이, 어버버라고 놀려대지만 사실 나는 랩을 할 때 단 한 번도 절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축구를 하기 위해 일찍 등교한 아이들이 교실에 우르르 들어왔다. 나는 당황해서 라임 노트를 덮었다. 승민이가 놀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승민이와는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다. 내가 작년 장래 희망 발표 시간에 래퍼가 되고 싶다고 말한 이후 승민이는 틈만 나면 나를 놀려댔다. 어쩌면 놀리는 게 당연했다. 나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말더듬이니까. 나는 그때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래퍼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승민이가 실로폰을 가져왔냐고 물었다. 준비물이 있었다니! 아차 싶어 나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가방을 확인했다. 승민이는 그걸 속냐면서 라임 노트를 가져갔다. 승민이는 내가 노트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책상 위에 올라갔다.
수학 수박 구박
영어 연어 버너
가수 박수 자주
바보 나도 아보카도
승민이가 얄미운 목소리로 라임 노트를 읽어댔다. 아이들은 승민이와 함께 나를 비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래퍼들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당당하게 맞섰을 텐데. 나는 책상에 엎어져 속상해할 뿐이었다. 승민이는 내가 반응하지 않자 시시하다는 듯 노트를 내 책상에 던져 놓았다. 힙합은 저항을 위해 발전했고, 자신의 의사를 솔직하게 전달하는 장르라는 걸 힙합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다. 어째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래퍼들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라임 노트를 가방 깊숙이 집어넣었다.
1교시 사회 시간에는 다양한 나라의 문화에 대해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고 발표하는 수업을 했다. 발표라니 역시나 자신 없었다. 발표만 하면 목소리가 개미만큼 작아지고 손이 달달 떨렸다. 다른 아이들은 척척 발표를 마쳤다. 오지 않았으면 했던 내 차례가 왔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부터 긴장이 됐다. 말을 더듬으면 어쩌지. 나는 차가워진 손을 꽉 쥐고 교실 앞으로 나갔다.
“제, 제가 발표…할 부, 부, 부분은 미구, 국…”
“쟤 말하는 것 좀 봐. 진짜 웃기다니까!”
누군가 발표에 끼어들어 말했다. 역시나 승민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승민이를 향해 그러지 말라며 고개를 저으셨다. 가슴이 답답하고 얼굴이 뜨거웠다. 모든 아이의 발표가 끝나자, 아이들은 소란스러웠다. 선생님께서는 주목하라며 손뼉을 치셨다.
“다음 주가 운동회인 거 알지? 4학년은 이인삼각 경기할 거야. 짝은 번호순으로 두 명씩 할 거고. 2교시 체육 시간에는 나가서 체육대회 연습할게.”
아이들은 자신의 짝을 찾아 하나둘 모였다. 승민이가 화난 표정으로 걸어와 내 옆에 섰다. 김승민, 김준우. 6번, 7번. 우리는 같은 조였다. 승민이의 입이 삐죽 나와 있다. 역시 말을 더듬는 나와는 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승민이가 운동장 바닥을 계속해서 차는 바람에 흙먼지가 일었다.
“선생님. 저 그냥 다른 애랑 하면 안 돼요?”
승민이가 손을 들고 말하였다. 선생님께서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셨다.
“달리기 가장 빠른 하준이랑 같은 조 되지. 왜 김준우 같은 애랑 된 거야. 김준우는 말도 느리게 하는데.”
승민이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마음속에서 나와 승민이는 어두운 공연장에 서 있었다. 나는 멋있게 모자를 쓰고 마이크를 잡았다. 비트가 둥둥거리며 흘러나왔다. 조명이 나를 비추었다.
YO 승민 너는 진짜 나빠
너 때문에 아파
너가 하는 말 다 가짜
어차피 내년이면 빠빠이
길 가다 똥이나 밟아
결국엔 내가 승리 봐봐
속이 시원해졌다. 마음속에서 진행한 랩 배틀에서 나는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승민이가 내 랩을 듣고 감탄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관객들도 다 같이 손뼉을 치며 함성을 질렀다.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났다. 그런데 날 놀려대는 승민이와 이인삼각이라니 걱정이 되었다. 승민이는 우리 반에서 달리기가 두 번째로 빨랐다. 축구도 잘했다. 제일 빠른 공격수로 골을 두 개는 기본으로 넣기 때문이다. 내가 방해될 게 뻔했다. 다리를 묶은 아이들이 한 조씩 출발하였다. 금세 승민이와 내 차례가 왔다.
“하나. 둘.”
승민이가 우렁차게 구호를 외쳤다. 구호에 맞게 오른발을 떼는 순간 나는 고꾸라졌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승민이와 함께 운동장 바닥에 구르고 있었다. 분명 나는 구호에 맞게 오른발을 들었는데. 곧이어 우리를 지켜보던 아이들이 승민이에게 손가락질하며 꾸짖었다. 승민이 때문에 운동회 우승 상품인 치킨과 피자가 물 건너갔다며 말이다. 몇 번을 연습해도 우리는 넘어졌다. 승민이는 구호대로 발을 드는 일이 없었다.
“너 바, 박치구나?”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박치야! 박치는 아니지!”
승민이의 말에 반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누가 봐도 승민이는 박치가 맞았다. 자신의 외치는 구호에 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건 승민이가 유일했다. 승민이의 발은 엇박자로 움직였다. 나는 엇박자로 유명한 벌스를 떠올렸다. 그 벌스를 짠 래퍼는 정박자와 엇박자를 오가기로 유명했다. 승민이는 일주일 내내 체육 시간만 되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주눅 든 승민이의 모습이 통쾌하기도 했지만, 이러다간 운동회 때도 나까지 함께 넘어질 게 뻔했다.
“너, 너, 학교 끝나고 나 좀 봐.”
승민이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내, 내가 너 도, 도와줄게.”
승민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승민이는 하교 시간에 나를 따라 운동장으로 나왔다. 나는 선생님께 허락받고 빌려온 이인삼각 고리를 승민이에게 건넸다. 승민이는 겁에 질려 보였다.
“이, 이건 나, 나중에 할 거야.”
그 말에 승민이는 안심한 듯 보였다. 나는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곤 랩을 하듯 구호를 뱉기 시작했다.
원 투 쓰리 포
원 투 쓰리 투 더 포
승민이는 내가 말을 더듬지 않아 놀란 듯 보였다.
“두, 둘의 차, 차이를 알겠어? 앞엔 정박이고 뒤, 뒤는 엇박이야.”
승민이는 모르겠다는 듯 대답을 망설였다. 나는 승민이에게 손뼉을 따라 치라고 말했다. 승민이가 점점 정박자로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분명 좋은 신호였다. 손뼉을 친 이후에는 발을 굴러보기로 했다. 쿵 쿵 쿵 쿵. 원 투 쓰리 포. 승민이는 몇 번 틀렸지만, 열심히 발을 굴렀다. 아직 이인삼각 연습도 안 했는데 힘들었다.
나는 집에 가는 길에 이어폰 한쪽을 건넸다. 승민이는 이어폰을 건네받고 오른 귀에 꽂았다. 엇박자를 잘 타기로 유명한 래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솔직히 엇박자가 뭔지 아직 모르겠어. 내가 엇박자로 행동한다는 것도 몰랐어.”
“나, 나도 처, 처음엔 그랬어.”
“근데 너 아까 말 안 더듬던데. 왜 또 더듬냐.”
“래, 랩할 때는 안 절어. 나, 나도 알아. 이상한 거.”
“근데 왜 랩을 안 해? 난 네가 랩하는 거 처음 봐.”
“그, 그야 잘, 잘 못하잖아.”
“박자 타는 것만 봐도 잘하던데. 자신감 좀 가져. 나 같은 박치도 있는데 뭐.”
승민이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 연습하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맨날 말 더듬는다고 놀려서 미안해. 나도 애들이 박치라고 놀리니까 부끄럽고 속상하더라.”
승민이가 수줍게 말했다. 나는 당찬 승민이만 봐왔는데,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승민이도 있구나. 기분이 완전히 풀어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용서를 구하는 승민이를 보니 기분이 나아졌다. 우리는 집까지 남은 길을 이인삼각 고리를 찬 채 걸었다. 승민이는 나도 구호를 외칠 수 있도록 일반적인 구호인 ‘하나, 둘’이 아니라 ‘원 투 쓰리 포’를 랩처럼 뱉어댔다. 왠지 운동회 당일에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운동장에 모든 학년이 모이는 날. 드디어 운동회 날이었다. 우리 4학년 2반처럼 짝수 반은 하얀 옷, 홀수 반은 검은 옷을 입었다. 이인삼각 경기가 첫 순서였다. 아이들은 연습을 열심히 했는지 다들 성공적으로 도착했다. 물론 박자가 맞지 않아 느려지는 친구들도 있었다. 앞 차례 친구들이 떠는 모습을 보니 괜히 나까지 떨렸다. 내 옆에서 승민이는 누구보다 가장 떨고 있다. 우리는 다리에 고리를 찬 채 서로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 투 쓰리 포”
독특한 우리의 구호에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연습 내내 넘어지던 승민이가 넘어지지 않자 아이들은 손뼉을 쳐주기도 했다. 이어진 발걸음에서 승민이가 한 걸음 한 걸음 힘을 주며 노력하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우리가 가장 빨리 들어왔다고 했다. 분명 아주 긴 시간 동안 걸어온 것 같은데. 승민이는 고리를 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치며 좋아했다.
승민이와 나의 활약으로 우리 반은 이인삼각 경기에서 큰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반 아이들은 치킨과 피자가 코앞이라며 좋아했다. 다음 경기는 계주 시합이었다. 우리 반을 대표하는 계주는 하준이였다. 하준이는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하준이는 계속해서 1등으로 달렸다. 우리 반 아이들은 환호했다. 그런데 그때, 아이들이 놀랐다. 하준이가 넘어졌다. 하얀 옷을 입은 모든 학생이 아쉬워했다. 야유를 보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준은 무릎을 절뚝이며 겨우 일어나 배턴을 건넸다. 우리 반 아이들은 양호실에 갔다가 자리에 돌아온 하준이에게 아쉽다고 말했다. 짓궂은 아이들은 하준이한테 너 때문에 지겠다며 나무라기도 했다. 하준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놀리는데 선수인 승민이가 조용했다. 선생님께서는 하준이를 다독여 주셨다. 운동회 내내 하준이는 풀이 죽어 있었다. 운동회의 끝이 보일수록 우리 반의 분위기는 안 좋아졌다. 백팀의 패배가 거의 확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운동회의 마무리가 좋게 끝났으면 했다. 그때 머리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가장 응원을 잘한 학급 한 반도 경품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운동회의 시작부터 6학년 누나들이 최신 가요의 안무를 추며 응원해서 모두가 포기했던 상이었지만 말이다.
“우, 우리 으, 응원상이라도. 노, 노리자.”
“됐어. 나 때문에 이미 끝났어.”
하준이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가망 없는 상을 어떻게 받냐며 고개를 저었다. 받을 수 있으면 네가 응원해 보라며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괜히 의견을 낸 것 같아 주눅이 들었다. 그때 승민이가 발을 굴러 비트를 만들었다. 승민이가 박치여서 그런지 비트의 박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승민이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아이들이 리듬에 맞춰 손뼉을 쳐주었다. 아직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랩 해본 적 없는데, 심장이 떨렸다.
넘어질 수 있지
승민이도 그랬었지
죄책감 들지 않기
백팀이 져도 우리는 이기지
해피지 너도 우리는 이 반이지
I say 할 수 You say 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가서 놀랐다. 더 놀란 건 아이들 같아 보였다. 내가 말을 더듬지 않는 모습을 처음 봤을 테니 말이다. 아이들 모두 내가 건네는 마이크에 맞춰 대답했다. 운동장에 ‘할 수 있다’는 말이 가득 울려 퍼졌다. 랩이 끝나자 아이들은 손뼉 치며 함성을 질렀다. 옆에 서 있던 승민이와 하준이도 마찬가지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이들 앞에서 랩을 했다는 사실에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만 같았다. 다른 학급들은 계주에서 넘어진 반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신나 하는지 궁금해했다.
“부, 부끄럽다. 래, 랩은 잘 못하는데.”
내 말에 아이들은 자신이 실제로 본 사람 중에 내가 랩을 가장 잘한다고 칭찬해 주었다.
“진짜? 아직 멀었는데….”
“어? 너 방금 안 더듬었어!”
승민이가 놀랐다는 듯 말했다. 나도 화들짝 놀랐다. 말 더듬는 걸 고치려고 엄마랑 상담도 다녀보고, 치료도 받아봤는데. 칭찬 한 번에 나아지다니! 물론 잠깐 나아진 걸 수도 있지만 기분이 좋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좋아진 분위기 속에 각자 잘하는 노래나, 춤을 선보이며 남은 운동회를 즐겼다. 드디어 결과 발표 시간이다. 검은 옷을 입은 아이들은 발표 전인데도 환호를 질렀다.
“흑팀 백팀 대결 결과를 공개하기 전에! 응원상은 말이지요. 4학년 2반!”
교장 선생님 말씀에 우리 반 아이들은 떠나가라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일정한 손뼉 소리 속에 튀는 소리가 있었다. 하준이는 손뼉마저 빠르게 쳤다. 승민이는 엇박자로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넘어지고, 엇박자를 타고, 말을 더듬어도 우리는 이겨냈다. 나는 승민이의 박자에 맞춰 카운트해 주었다.
원 투 쓰리 투 더 포
우리는 모두 다른 박자를 즐기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