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웅이(아들)한테 브라질 여자친구가 있다고 해 굉장히 당황했지….” 중년 여성의 얼굴이 굳어진다. 맞은편에서 한국 남성과 꼬옥 붙어 앉아 있던 이국적 외모의 여성 표정도 얼어붙는다. 또 다른 커플, 분홍 장미를 든 남성이 금발 여성 이마에 입을 맞춘다. 여자는 화난 얼굴이다. “꽃값은 왜 말해? 과시하는 거야?”
국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아니다. 브라질의 소니 픽처스TV 산하 제작사가 만들어 1일(현지 시각)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내 한국인 남자친구(원제: Meu Namorado Coreano)’. 브라질 리얼리티 최초로 100% 한국에서 촬영했다. 한국인 남성과 열애 중이거나 교제를 시작한 브라질 여성 다섯 커플의 ‘실제 상황’을 통해 한국인의 삶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한국다움, 글로벌 장르가 되다
지난해 전 세계를 달궜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이후 ‘K’가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창작자와 제작자, 즐기는 사람 모두 한국을 벗어났다. 해외에서 만든 K콘텐츠일수록 ‘한국다움(koreanness)’을 더 추구한다. ‘내 한국인 남자친구’는 스태프 100명 이상이 22일간 서울을 누비며 장거리 연애와 직장 문화 등 한국인의 일상(日常)을 카메라에 담았다. 북촌 한옥마을, 청계천 등 서울 곳곳이 나오고, 김밥과 라면 등 한국 먹거리가 등장한다. 매기 강 감독이 지난해 한 컨퍼런스에서 “내 작품의 핵심은 코리안니스(한국다움)”라고 밝혔듯이, 서울의 일상이 프로그램의 성공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K푸드와 K뷰티의 폭발적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40여 개밖에 없던 한식당이 최근 300개 넘게 성업 중이고, 연간 1억달러(약 1400억원) 이상 한국 화장품을 수입해 가는 나라의 숫자는 10년 전 4개국에서 지난해 19개국으로 급증했다.
미국 CNN은 배우 대니얼 대 킴이 공동 총괄 프로듀서 겸 취재 요원으로 나선 오리지널 4부작 다큐 ‘K-에브리싱’(방송 예정)을 통해 ‘K의 모든 것’을 들여다본다. 에이미 엔텔레스 CNN 월드와이드 부사장은 미 대중문화 매체 데드라인 인터뷰에서 “한국이 어떻게 음악·음식·TV·영화 분야에서 트렌드를 이끌며 전 세계 대중문화 운동을 촉발하고 글로벌 문화 현상이 됐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주류 사회가 K컬처에 분석의 카메라를 갖다 대고 있는 것이다.
◇익숙해지고, 선망의 대상이 된 K
지난해 방송된 애플TV+의 리얼리티 예능 ‘K팝드’에선 유명 팝 가수 보이 조지가 한국의 걸그룹 스테이씨(STAYC)와 협업해 자신의 히트곡 ‘카마 카멜레온’에 한국어 가사를 넣어 부른다. 보이즈 투 맨(Boyz II Men)과 스파이스걸스의 멜라니 B도 등장한다. 유명 팝 가수들이 자신의 콘텐츠에 ‘한국다움’을 가미하는 것. K가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영국의 미디어 콘텐츠 전문 조사 기업인 앰피어 어낼리시스(ampere analysis)는 지난 8월 보고서에서 글로벌 구독 매체 해외 시청자 중 ‘한국 드라마·영화를 자주 본다’는 비율이 2020년 22%에서 2025년 35%로 13%포인트 상승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한국 콘텐츠 시청 시간은 이미 영국·일본 등을 제치고 미국에 이은 전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이미 한국적 요소가 들어간 작품들이 모두 K컬처로 인식되고 있다”며 “한국이 만드는 ‘메이드 인 코리아(K)’를 넘어 해외에서 한국을 담아내거나 협업을 하는 ‘메이드 위드 K’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한국은 선망과 기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란 출신 하산 나제르 감독의 영화 ‘허락되지 않은’(2025)에는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중 한 소녀는 K팝을 부르며 한국에서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지난해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수상작인 리투아니아 영화 ‘톡식’에선 모델을 꿈꾸는 10대 소녀들이 나온다. 이들은 한국 진출을 꿈꾼다. 자신들이 사는 쇠락한 공업 도시를 벗어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이 작품들에서 ‘K’는 세상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활기와 선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묘사된다. 황진미 문화평론가는 “우리는 한국을 경쟁이 치열하고 살기 팍팍한 나라로 여기지만, 우리의 역동적인 모습을 주목하는 이도 많다”며 “‘케데헌’ 신드롬에서 봤듯이, 전 세계 10대가 한국에 대해 긍정적 인상을 갖게 된 것은 향후 한국의 미래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 배경엔 10여 년 전부터 자신들의 한국적 뿌리를 찾고 형상화해 온 이민 2~3세 작가들의 열정적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2014년 출간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인 제니 한의 하이틴 로맨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넷플릭스 시리즈로 시즌 3까지 제작됐다. 전 세계 10대가 열광한 이 프로그램에서 식탁 가득 차려진 쌈 채소와 밥, 국, 반찬 등 한국식 상차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핀오프작 ‘XO, 키티’(2023)는 서울 명동과 DDP, 강남역 등 한국 곳곳의 명소를 담아냈다. 에미상 8관왕에 오른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의 감독 이성진, 데뷔작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패스트 라이브즈’의 셀린 송 등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한국적 소재를 녹여 미국 주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