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정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1926~2016)는 90세 천수(天壽)를 누렸다. 1959년 1월 집권 후 미국 CIA가 벌인 암살 시도를 모두 극복했다. 미국이 카스트로 목숨을 노린 횟수는 638차례였다고 카스트로 경호 책임자 에스칼란테가 자신의 책에서 밝혔다.
미국의 군사적 침공도 막아냈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4월 17일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인 1500명을 무장시켜 쿠바 서남부 피그만을 공격하는 군사작전을 승인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상륙한 쿠바인 100여 명이 죽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혔다.
카스트로 권력 기반은 더 단단해졌다. 세습 전제 군주가 아닌 인물로는 세계 최장 집권 기록을 세웠다. 2008년 건강 문제로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국가평의회 의장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49년간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다.
49년 전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를 내쫓고 다 같이 잘사는 민주적인 나라를 건설하려던 이상(理想)은 실현하지 못했다. 스스로 최장기 독재자가 되었고, 나라는 다 같이 못 사는 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체 인구 20%에 이르는 200만 국민이 쿠바를 떠났다. 친딸 알리나 페르난데스마저 미국으로 망명했다.
카스트로는 여느 독재자와는 다르게 검소한 지도자로 알려져 있었다. 옷은 남루한 녹색 군복만 입었다. 노년에는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으로 바꿨다. 수도 아바나 외곽 방 4개짜리 아담한 집에서 산다고 했다. 쿠바 정부는 “카스트로는 가난한 쿠바 국민과 똑같이 검소하게 생활한다” “쿠바 국영 기업의 수익은 오직 국민을 위해 쓰인다”고 선전했다.
사실이 아니라는 폭로가 나왔다. 카스트로의 전 경호원 후앙 산체스는 2014년 출간한 책 ‘피델 카스트로의 숨겨진 삶’에서 “카스트로는 절대 군주처럼 화려하게 살았다”고 주장했다. 중령 계급 군인이었던 산체스는 2008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카스트로는 호화 요트를 타고 카리브해 개인 섬 ‘카요 피에드라’에서 휴양을 보내곤 했다. 섬에 있는 별장에는 돌고래와 거북이가 수족관에서 헤엄쳤다. 별장은 볼링장, 농구장, 병원까지 갖춘 ‘에덴의 정원’이었다. 이곳엔 선택된 사람만 올 수 있었다. 그중엔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던 가브리엘 마르케스도 있었다.
카스트로는 고급 위스키를 즐겼다. 시가 상자 속에는 아프리카산(産) 다이아몬드를 숨겨뒀다. 남미 마약 조직의 밀매를 도와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기도 했다. 여성 편력도 화려했다. 비서, 비행기 승무원, 통역사 등과 관계해 혼외자 9명을 뒀다.
카스트로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2014년 쿠바는 미국과 53년 만에 국교를 재개했다. 동생 라울 카스트로는 2015년 4월 파나마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만났다. 2018년 4월 라울은 국가평의회 의장에서 물러났다. 7월에는 사유 재산을 인정하는 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라울 카스트로는 89세를 맞은 2021년 4월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직책에서도 퇴임했다. 이로써 62년에 이른 ‘카스트로 형제 통치’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후임은 명목상 국가 수반인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맡았다.
카스트로 통치 시기 ‘북한 형제국’을 표방하며 1988년 서울 올림픽에도 불참했던 쿠바는 2024년 2월 14일 한국과 수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