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말로.

1960년 9월 28일 프랑스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1901~1976)는 문인·배우·예술인 140명에게 국영 방송 및 국고 보조금 받는 연극 출연을 금지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알제리 독립 전쟁에 참가하지 말 것을 프랑스 청년들에게 권유하는 선언문에 서명한 이들이었다. 장 폴 사르트르, 프랑수아즈 사강 같은 저명 인사도 포함됐다.

정부가 정치 의견 발표를 이유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그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해도 괜찮은 것인가. 더구나 담당 장관 앙드레 말로는 과거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 같은 인물이었다.

1959년 12월 17일자 2면.

조선일보 미니 칼럼 ‘만물상’은 “애국자이자 작가요, 문인이요, 거기다가 혁명가요, 행동가였던” 말로가 장관으로서 벌인 ‘블랙리스트’ 시책을 비판했다.

“공성명수(功成名遂) 귀현(貴顯)한 자리에 앉으면 소시(少時)의 혁명가도 우둔한 탐재가(貪財家)가 되고 급진적 이상주의자도 고집불통의 보수주의자가 되기가 쉽다. 관개(棺蓋)를 덮고서야 그 인물을 평가할 수 있는 게 사실이지만 세계의 지성으로 알려진 ‘말로오’가 회갑을 넘어서자 이런 짓도 하게 되니 각의(閣議)에 따른 결과라고는 하겠으되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1960년 12일 자2일자 1면)

말로는 파리 동양어학교를 나와 20대 시절 캄보디아·베트남·중국 등에서 반(反)제국주의 활동에 몰두했다. 이때 경험을 쓴 소설로 20대 후반~30대 초반에 이미 최고 지식인 반열에 올랐다. 중국 광둥 총파업을 배경으로 한 소설 ‘정복자’(1928), 캄보디아 밀림에서 크메르 유적을 찾는 모험담 ‘왕도’(1930), 상하이 공산당원의 장제스 암살 공모를 소재로 한 ‘인간의 조건’(1933)은 모두 당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서른두 살 때인 1933년 ‘인간의 조건’으로 프랑스 문학 최고 권위 공쿠르상을 받았다.

1976년 11월 24일자.

불의에 대항하는 투쟁에 기꺼이 헌신했다. 히틀러에 반대하는 반(反)나치 운동에 참여하고,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비행기를 직접 몰아 왕당파군에 폭탄을 투하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드골 장군을 따라 레지스탕스 활동을 펼쳤다. 드골이 집권한 1958년 공보부 장관, 이듬해 신설한 문화부 초대 수장으로 드골이 하야하는 1969년까지 10년간 재임했다.

말로는 문화 장관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문화적 향유를!”을 외치며 ‘문화의 대중화’에 나섰다. “프랑스 전역에 문화센터를 만들어 프랑스 문화를 한 차원 높였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2002년 7월 9일자 5면)

앙드레 말로 추모 열풍. 1996년 11월 21일자.

별세 20주기를 맞은 1996년 11월 프랑스의 역사적 영웅만이 안장되는 팡테옹에 이장됐다. 프랑스 정부는 ‘앙드레 말로 예술상’도 제정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 리오타르는 평전 ‘말로의 이름으로’를 펴냈다. 리오타르는 “좌파는 그를 배신자로 간주하며 혐오할 것이고, 우파는 진보적 지식인이었던 그의 과거에 함구할 것이지만 그 어느쪽도 말로의 진정한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다” “말로는 프랑스인들을 비굴함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상 국가를 실현하려고 했을 뿐”(1996년 10월 1일자 23면)이라고 했다.